머릿수로 정책적 의사결정을 내릴 때, 대체적으로 부정적인 뉘앙스로 담지않으려면 대중주의라는 말을 쓰고 부정적의미를 듬뿍담을 땐 포퓰리즘이라는 단어를 쓴다. 근데 기본소득제를 두고 포퓰리즘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기분이 참 묘한 요소가 하나 있다. 언론이나 정치인들이 포퓰리즘이라 비판하니까 그냥 그런가보다하고 따라가는 사람들말고, 앞장서서 재난지원소득같은 것을 포퓰리즘이라고 몰아세우는 세력들이 있다. 헌데 그들도 포퓰리즘 논란에선 자유롭지않다.
대표적으로 표퓰리즘 소리를 안듣는데 사람에 따라선 포퓰리즘의 끝판왕격인 정책이 하나 있다. 바로 재건축 재개발 완화다. 신문이나 뉴스를 구독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못해도 한번 쯤은 사설이나 패널이 재건축 재개발을 두고 '정부가 왜 개인 재산권을 침해하느냐'고 반발하는 것을 본 적 있을 것이다. 그 부분 보면서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 없는지?
대한민국 정부의 권한엔 한계가 있다. 또한 재건축 재개발은 올림픽개최처럼 국가역사상 한 두 번 일어나는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개인 재산권을 침해하는 듯한 행위가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개인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식의 주장을 접했을 때, 정부가 마음대로 재산권을 침해한다고 생각하는 게 맞을까 아니면 정부가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 다른 근거가 있다고 생각을 이어나가는게 맞을까.
결론만 말하자면, 다른 근거가 있다. 정부가 재건축 재개발에 감내놔라 대추내놔라 세금내라 기부채납해라 간섭할 수 있는 건, 재산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하는 쪽은 정부가 아니라 재건축 재개발을 하려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재산권이 소중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면, 응당 타인의 재산권도 소중하다는 인식이 뒤따라야한다. 그렇다면 재건축 재개발처럼 철거과정이 동반되는 중요한 재산적 결정을 해야할 땐 모든 구성원의 100% 동의를 받아야한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기준선은 50%~75%다. 나머지 25%이상의 의사가 다수결에 의해 무시되는 것이다.
이렇게 머릿수로 타인의 재산권 행사 의사를 깔아뭉개는 행위를 정부는 제도적으로 허용해준다. 그리고 그 수수료로 세금을 걷어가거나 임대주택을 받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한쪽이 재건축 재개발에 세금이나 수익환수를 시도한다거나, 기부채납을 더 내놓으라고 하고, 반대쪽이 그에 맞서 완화하자고 충돌한다. 재산권을 침해당하는 시민들 vs 재산권을 침해하는 정부 구도가 아니다. 타인의 재산권 행사를 머릿수로 무시한 주체들끼리의 줄다리기일 뿐이다.
따라서 대중주의임에는 확실하고, 일부사람들이 사유재산권 행사를 못하고 철거에 응해야하는 걸 부정적으로 보거나 집값상승, 노동소득자들의 박탈감 등에 주목하는 사람들한텐 재건축 재개발도 포퓰리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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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재건축 재개발 완화해주자는 세력들이 재난지원소득같은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포퓰리즘 소리를 한다. 그냥 쓰면 괜찮은데 부정적인 의미를 잔뜩 담아서. 그거야 쓰는 사람 마음이지만 함정하나는 주의해야하는데 앞서보았듯 포퓰리즘 잔소리를 많이 한다고 그쪽이 반포퓰리즘이거나 엘리트주의 인 것은 아니다. 어차피 포퓰리즘의 기준선은 각자 다르기때문이다.
이번 코로나 19 백신 조기투여문제가 좋은 예다. 해 넘길 때 언론에선 백신 조기 투여를 문제를 두고 안전성 vs 신속성 대국민 여론조사를 대문짝만하게 실었다. 그러한 여론조사를 받아들여 최대한 신속하게 투여한다고 했을 때 그것은 포퓰리즘인가 아닌가? 누군가는 포퓰리즘하지말고 전문성있는 의사의견위주로 가야한다고 말할 것이고, 누군가는 대중, 특히 자영업자만큼 신속성을 잘파악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사람들이 포퓰리즘의 기준선을 주입당하고 있다. 재난지원소득이 실제로 포퓰리즘인지 아닌지 떠나서 말이다. 앞서 보았듯 대중주의와 포퓰리즘의 경계는 매우 주관적인 것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편한데 재난지원소득이 포퓰리즘이라면 어느선부터 포퓰리즘이 아닌 것인지? 기재부의 의견만을 반영하면 되나? 아니면 정치인들도 포함해야되나? 이 단어의 쓰임새는 그런게 아니다. 언론의 기준선으로 포퓰리즘이면 포퓰리즘이라고 말하고 싶은거다.
이건 유권자라면, 특히 현 보수진영의 열세에 불만을 가진 보수성향 유권자라면 예민하게 받아들여야한다. 일단 기분이 나쁘다. 포퓰리즘 기준선을 주입당한다는 건 '너까짓것들이 뭘알아?'와 종이 한 장 차이다. 근데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포퓰리즘 기준선을 주무르게되면 해당 정당이나 정치세력은 이익을 공유하는데 나태해지고 게을러진다.
가령 '재난지원소득은 포퓰리즘이니까 그 돈으로 인프라 투자에 신경쓰자'라는 주장을 한다면 인프라 투자가 최종적으로 유권자 이익으로 돌아가도록 세심하게 신경써야한다. 인프라투자를 한들 기업의 이익으로 이어진다는 보장부터가 없을 뿐더러 기업의 이익이 유권자 이익으로 환원된다는 보장 또한 없다. 기업의 이익향상이 벌어진다하더라도 유권자 각 개인은 파편화되어있다. 그러니까 기업의 이익이 자신의 이익으로 이어지는 사람이 있는 가하면 상대적으로 영향이 덜하거나 없는 사람도 있다.
기업에 직접투자를 한 사람이라면 가장 확실하게 이익이 공유된다. 단 그것도 투자액수에 따라 영향을 달리받는다. 노동으로 기여한 사람은 노동소득의 향상을 바랄 수 있지만, 시장가격과 탄력성에 영향을 받는다. 쉽게 말해 나 자신이 더 값싸고 쉽게 대체되는지 아닌지에 따라 달라진다. 노동도 자본도 기여하지않았다면 아무런 이득을 얻지못하거나 받더라도 간접적이다. 어떤 상태에 놓여있든 각자 사정에 따라 인프라투자 쪽이 나을 수도 재난지원소득이 나을 수도 있다.
근데 포퓰리즘의 기준선을 맘대로 주무르게되면 선호하는 선택지가 유권자의 이익으로 전이되도록 신경 많이 안써도 된다. 어차피 이건 포퓰리즘이다 저건 포퓰리즘이다 주입시켜서 날로 먹으면 그만이다. 그 나태함때문에 이명박 정권 말기때부터 현 3040이 이탈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민주당 주 지지층이 민주화투쟁 운동권? 그렇지않다. 50대 이상이야 운동권 세대라 쳐도 40대 이하는 운동권과 접점이 별로 없거나 있어봐야 운동권의 병폐가 맹비난받던 끝물시기에 잠깐 발담근 정도다. 90년대 대학생활보내던 사람들이 벌써 50대다. 그래서 박근혜 전 대통령 없었으면 정권교체는 4년은 더 빨랐을 운명이었다. 박근혜 탄핵아니었으면 보수 안망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원맨쑈 차력쑈로 선거 승리한 게 몇 번이었는지.
그래도 단순히 나태해지는 정도라면 다행이다. "자기들끼리의 포퓰리즘"에 돌입하게되면 아예 변화 자체를 거부하게 된다. 기껏 사람들이 포퓰리즘적이지않다는 선택지를 골라주고 그 결과물로 일자리 질 상승, 복지확대, 임금상승 등을 요구했을 때, 정당주도세력이 거기다가는 포퓰리즘 딱지를 붙여놓고, 재개발 재건축처럼 고위층에 돈이 되거나 자산가격방어에 도움되는 정책들은 절대 포퓰리즘 취급 못받게 하는 것이다.
포퓰리즘의 어근은 원래 라틴어로 영어로는 다들 아는 people이다. 실질적으론 포퓰리즘인데 누군 사람취급하고 누군 사람취급안하는 벽이 존재하게되면 그 정당은 외연확장을 못하게 된다. 정당노선을 주도하고 있는 쪽에 손해가 되기때문이다.
특히 자신들의 정책방향이 과대대표되고 있다면 아예 정권교체를 포기하고 주저앉는 게 합리적이다. 60석 얻을 수준의 정책노선을 가지고, 거대정당 프리미엄으로 100석 120석 얻었다면, 그 60석 정책 지지자입장에선 정권교체와 자기네 60석 정책을 파기하는걸 맞바꾸느니 현 정책노선을 유지하는 한도내에서만 의석수를 늘리려고 하게 된다. 집권여당이면 지도부가 나눠줄 전리품이라도 많으니 달랠 수나 있지 야당이 이런 상태에 빠지면 끝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