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2 흑표 전차 3차양산이 결정되었을 때, 역시나 파워팩 변속기 문제로 시끄러웠다. 국산 변속기를 달아야하는 언론이나 방위산업체는 성능과 내구성에 문제가 있어도 국내방위산업지원, 부품수급 등의 이유 국산품을 채택해야한다고 했고, 독일 직도입 측은 신뢰성과 성능을 앞세웠다. 독일 쪽은 독일 대로 기분이 안좋았다. 양산과정에서 한국이 보인 태도는 국산시도해보고 안되면 너네꺼 쓰겠다는 스페어 취급이었으니까.
제목은 백신관련인데 왜 뜬금없이 전차 이야기가 나오냐면, 코로나 19 백신 도입을 둘러싼 일련의 과정들이 방위사업 국내생산 vs 해외직도입과 무척 닮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은근히 국산파 감싸는 언론의 태도까지도.
최근 옆나라 이야기 계속 나오던데, 일본은 처음부터 외산직도입에 올인이었다. 국산백신을 찬밥취급한다는 비판을 뒤로하고 서둘러 해외직도입에 나섰다. 그 기저엔 일본의 백신산업이 그리 발달하지않았다는 판단이 깔려있었다. 반면 한국은 국산백신, 최소한 위탁생산에 미련을 잔뜩 가지고 있었다. '백신주권'이라는 단어는 매우 광범위하게 쓰였으며, 정세균 국무총리가 해외직도입을 발표하는 그 자리에서 조차 말미에 내년엔 국산백신을 볼 수 있을 거란 사족이 붙었다.
그러니 주력백신이 아스트라제네카가 될 건 처음부터 뻔했다. 아스트라제네카가 신뢰성위기에 빠지자 그 다음이 미국산 노바백스 위탁생산이 될 건 뻔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다. 노바백스 도입계획이 생각보다 늦다는 게 밝혀지자 스푸트니크가 검토되기 시작했다.
이 셋과 화이자 모더나의 차이는 간단했다. 아스트라제네카 노바백스 스푸트니크는 국내위탁생산이 가능한 백신이었다. 화이자 모더나는 국내생산이 어려웠다. 하려면 추가적인 투자가 필요했고 기간도 더 필요했다. 아스트라제네카는 기존방식이라 검증되었고 화이자는 신기술이 도박이었다?
국산에 목을 맨 이유가 단순히 확보에 실패한 것인지, 아니면 백신 주권과 공급량 안정때문인지, 방역상황을 낙관했던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국산을 선호해서인지, 그것도 아니면 이 기회에 국내 바이오 산업을 키울 생각이었던 것인지 간에 중요한 건 정부와 정치권이 해외 직도입이 아닌 국내 생산에 목매게 만든 주체가 분명 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미개발 상태의 백신은 순전히 전문가의 영역이기때문이다. 앞서 말한 전차엔진의 경우는 분명 기술자의 영역이라고 부를 수는 있으나 앞선 사례가 많이 쌓여있었고, 전투작전능력이 내구과 가속력으로 수치화되어있었다. 하지만 작년 여름 백신 선택은 미지의 영역이었다. 이것도 저것도 개발중이었다.
그러니까 국산백신 위탁백신을 높게 평가한 근거가 분명 존재한다. 차라리 아예 무식해서 국산백신 위탁백신 직도입 중 뭐가 좋은지 나쁜지 판단이 안섰다면 겁이 나서라도 닥치는대로 주워담아야 정상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옆에서 누군가 '국산 개발 가능하다', '우리가 할 수 있다' 바람 넣은 게 없었다면 말이 안된다.
가장 의심스러운건 역시 '로비'다. 방산이슈에서도 흔히 문제되는 건데 정경언유착이다. 백신 도입 이슈에서 한가지 눈에 띄는 점은 이런 유형의 이슈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해외직도입 vs 국내라이센스생산' 프레임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올해 초 국민들에게 백신도입과 관련해 안전성과 신속성 중 어느 쪽을 중시하는 지 묻는 설문조사가 있었는데 해외직도입 무시 안했으면 그 둘은 자연스레 해결될 요소였다. 그러니까 여론조사는 해외직도입과 위탁생산을 두고 물었어야했다.
이 프레임의 유무는 대단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직도입과 국내생산 프레임은 필연적으로 정경유착까진 아니더라도 최소 국내기업 밥그릇챙겨준다는 비판이 따라온다. 그러면 코로나 19 사태의 심각성을 감안하면 처음 이 프레임이 나왔으면 당장 직도입도 하자는 쪽으로 기울었다. 만약 이 프레임을 고의적으로 빼놓는다면, 정부만 욕먹고 끝난다.
물론 이번 사태에서 정부는 결과적으로 욕먹을 짓 많이했다. 국뽕에 취해 직도입을 배제했다면 그냥 답도 없는 거고, 낙관적인 정보가 쏟아졌더라도 스페어를 확보하지못한 오판의 책임이 있으며, 그 낙관의 근거가 기업이나 언론일 경우 이익집단을 전적으로 신뢰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설마 기업일감이 걸린 문제에서 언론이 이익집단이 아니라는 헛소리를 하진않겠지?
그나마 아스트라제네카 65세 이상 접종은 연기해서 욕먹을 건 먹겠다는 입장이긴하다. 근데 먹는 건 욕만은 아닐건데 달레이 된 기간 중 발생한 사망자. 그 책임과 원한. 이 무거운 걸 감수해서라도 전문가 의견대로 갔다고 좋게 서술해야하는지? 근데 처음부터 닥치는대로 구입했으면 문제시될 일은 없었다. 다만 직업공무원들한테 뭐라 할 일은 아닌 게 정부와 검찰언론 사이가 나쁘면 공무원들한테 기대할 건 없다. 괜히 끼어서 다치니까. 그건 월성 원전 문제만 봐도 확실하다.
여담이지만 월성원전과 거기서 파생된 북한원전 이슈를 두고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없네 한 이유가 바로 이거다. 진짜 국민들 엿먹이는 건 절차에 하자가 있을 때가 아니고 소수의 이익을 우선시해 다수의 손해가 발생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추진되었을 때다. 헌법과 법률을 지키지않은 정책추진이 문제시되는 건, 그렇게 절차대로 움직이지않았을 때 외부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였을 의심이 크기때문이지 절차 그 자체가 절대 선이어서가 아니다. 만약 유권자들이나 시민들이 수용할 수 있는 정보량이 무제한이라면 상관없지만 수용량에 한계가 있다면 더 중요한 이슈들을 밀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