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댓글 25000+개 기사가 떳다. 그야 정부가 슈퍼나 마트에서 할인을 못하게 한다니까 사람들이 얼마나 놀랐을까? 그런데 눈치빠른 사람은 시민 인터뷰가 없다는 것에서 위화감을 느꼈을 것 같다. '가격 인상', '할인 금지'같은 내용이 보도될 땐 대개 시민 인터뷰가 딸려나온다. [A씨 (부산 중구) : 요즘 돈도 없는데 왜 할인을 금지시키는 지 모르겠어요.] 처럼. 특히 서민 장바구니에 민감한 소비재라면, 시민 인터뷰를 등장시키는 것이 효과적이다. 시청자 혹은 독자들의 공감을 사기 쉽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아무리 대형마트 자율포장대 문제로 잡음일으킨 환경부라지만, 전세계 최초로 할인을 전면 금지시킬 정도로 배짱이 두둑한가? 따져보면 의심이 들었을 것이다. 특히 요즘은 헤드라인 낚시가 많다. 그래서 설마하면서 본 사람들이 많겠지만, 기사 원문에서도 친절히 - 묶음 판매는 가능하지만 묶음 ‘할인 판매’는 금지된다. - 로 할인 금지라고 못박아놨다.
그런데 좀 더 자세히보면,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의 하위 법령인 ‘제품의 포장재질·포장방법에 관한 기준 등에 관한 규칙’ 개정안(재포장금지법)이라는, 기사 헤드라인과 전혀 맞지않는 법안 명칭이 등장한다. 10대 종합일간지와 비교 대조해보면 '할인금지'와는 거리가 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가령 3시간 뒤 뜬 중앙일보 기사(https://news.joins.com/article/23806121)와도 차이가 난다.
이게 소비재관련 이야기라 망정이지, 중요한 국가정책이나 정치외교적 문제였다면 아찔하다. 아니 그리고 기사에 이상함을 느끼고 비교대조하는 것 자체가 본말전도다. 시간아끼려고 정부홈페이지 안가고 기사보는 건데 비교대조하느라 몇 배나 시간을 더 잡아먹을거면 신문이 뭐하러 필요하지?
이번 '이중포장금지' 사건도 마찬가지다. 기사를 보면 가이드라인 날짜가 18일로 되어있다. 하지만 환경부 홈페이지 보도설명에는 해당 가이드라인이 올라와있지않다. 정보를 민간 기자들에게 독점시키니까 이런 참사가 벌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링크 걸 곳을 만들어두고 여기다 링크거세요 - 라고 해야지, 링크를 거는쪽에 기대를 하면 안된다. 왜냐하면 정보를 가공해 제공하는 건 그 자체로 권력이다. 기사를 쓰는 쪽은 직접링크를 열심히 활용할 동기가 별로 없다.
그래서 환경부도 문제가 있긴하다만은, 기사가 해도해도 너무한 수준이라 환경부를 탓할 일이 아니다. 신문에 따라 정파나 논조가 갈리는 것은 이젠 상식이다만, 이건 정도가 너무 심하다. 재포장금지라는 말을 놔두고 묶음할인 금지라는 용어를 굳이 사용한 것도 노골적이지만, 헤드라인 낚시라고 보고 넘기기엔 내용에서도 할인을 금지하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게 만들어놨다. 기사입력시간도 굉장히 재미있다. 2020년 6월 19일 오후 5시로 되어있는데, 이 날은 금요일이다. 18일 가이드라인을 19일 퇴근시간에 배포해 정부 욕먹일라고 작정했다고 의심받을만한 시간이다.
실제 이후 환경부 대응은 19일 짤막하게 설명자료가 나갔고(아마 담당자는 야근했겠지?) 20일 사실은 이렇습니다- 가 한번 더 나갔지만, 결국 22일(월요일) 재검토해 다시 발표하는 걸로 대응했다. 그리고 이 내용은 이틀 만에 환경부가 슬그머니 없던 일로 한다고 기사가 나갔고. 이번에도 베스트 기사 등극.
그런데 문제는, 일이 이상한 방향으로 너무 커져버렸다는 점이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할인 금지'로 여기고 있는터라, 여기서 환경부가 물러서면 '할인 금지'를 하려 했었다는 소식이 '사실'이었다고 사람들은 결론을 내려버린다. 이미 기사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도 퍼뜨리는 사람들이 보인다. 환경부가 유통업체 간 차별 등의 이유로 물러선 뒤에 이들은 문재인이 할인금지 간보다가 철회했다고 소문을 퍼뜨릴 것이다.
물론 기사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정도로 꼼꼼히 체크하는 사람들이 많을까~ 아니면 메인기사를 한번 보고 넘기는 사람들이 더 많을까? 이번에 환경부가 당하면 다음번에도 또 이런 일이 터지지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따라서 만약 환경부가 이 기사를 두고 광고주에게 이득을 주기위한 기획기사나, 더 나아가 아예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업계에서 사주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이 사건이 정부와 한국경제 서로 곱게는 안끝날 것이다.
만약 강경대응차원에서 규제를 더 꽉조이는 쪽을 선택한다면, 그동안 소비재기업들이 해 온 행동들이 최대 변수가 된다. 사실 환경부의 소비재관련 각종 포장규제는 시민들의 환경의식이 갑자기 높아져서 탄력받는 게 아니다. 가격과 내용물 측면에서 소비자들의 불만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포장 쪽은 과자 업계에 대한 게 가장 심한데, 과자업계들은 가격은 올리고 내용물은 줄이는 과정에서 포장지 사용량을 늘렸다. 할인 쪽은 '눈속임 할인' 불만이 깔려있다. 그냥 사는 것보다 묶어서 사는 게 더 비싸거나, 말이 1+1이지 대용량 구매를 강요하는 것, 심지어 1+1을 앞세우면서 개별 내용물을 줄여 실질적으론 가격인상을 시키기도 한다.
이 소비자들이 포장지 논란이 터졌을 때 여론의 향방을 좌우할 것이다. 포장은 명분일 뿐이고, 가격인상과 내용물 축소에 불만을 갖고 있었던 사람들. 규제로 인해 가격인상이 우려다는 업계의 주장이 먹힐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포장지 더 쓸 돈으로 가격과 내용물부터 충실하라는 역풍을 소비자들로부터 받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