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하게. 비정규직 근로자 입장에선 본사 직고용 > 자회사 정규직 > 용역업체 순으로 좋다. 반대로 인건비 절감차원에서는 본사 직고용 < 자회사 정규직 < 용역업체 순으로 좋다. 표면적으론 이 정도. 하지만 이 이슈를 좀 더 깊게 보고 싶다면 분류작업이 필요하다. 직고용, 정규직, 비정규직, 외주용역 등의 단어들이 뒤죽박죽섞여서 혼란에 빠지기 십상이다. 헷갈리지않으려면 2단계로 정리를 할 필요가 있다.
1단계 용역업체 vs 정규직전환(본사 직고용 or 자회사 정규직)
14년 전(2006년) 동아일보기사
http://www.hani.co.kr/arti/society/media/105491.html
이 1단계는 이미 전환 쪽으로 기울어진 문제다. 개인적으론 이걸 단기간에 뒤집는 방법은 국회의원 임기를 2년으로 줄이는 것 뿐이라고 보고 있다. 국회의원 임기가 2년으로 줄어든다면 우리가 솔선수범했다고 못박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테니 제껴놓자. 전환 쪽으로 기울어진 건 일단 외부용역업체의 낮은 임금과 고용불안정성부터 시끄러웠고, 용역업체가 중간에 가져가는 돈에 대한 반감도 상당했다. 그리고 중요한 이해관계자 중 하나인 취업준비생들과 청년층이 정규직전환에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일부에선 공정성을 들어 열심히 시험 공부한 취준생들은 뭐가되냐고, 정규직전환 자체를 하면 안된다고 주장하지만, 애초에 정규직전환 정책이 탄력받은 이유 중 하나가 외주용역시스템에 채용 공정성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인맥채용]문제다. 가령 공항공사 업무 일부를 외부 용역업체에 주었을 경우 인건비 절감효과는 확실하다. 문젠 직원 선발권이 용역업체에 넘어간다는 점이다. 용역업체에게는 시험으로 직원을 뽑을 의무가 없다.
이 때 용역업체는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위해 '가성비'가 좋은 사람을 채용하게 되는데, 문젠 이 가성비 안에 능력 외의 요소가 들어간다는 것. 예를 들어 아르바이트 생 하나를 뽑더라도 본사 정규직 직원과 끈이 있을만한 애를 뽑는 게 용역업체 입장에서 훨씬 합리적이다. 그 편이 위에 좋게 보일 수 있고 혹여 알바생이 대형실수나 사고를 치더라도 원만하게 수습될 수 있다. 채용에 고난이도 기술이나 고도의 지식이 요구된다면 얘기가 달랐겠지만, 이번에 쟁점화 된 자리들은 대부분 육체노동직이 많다. 그래서 본사에서 따로 떨어져나간거기도 하고.
정부 “공공기관 통합채용 도입 방안” 등 공정채용 논의
http://www.lec.co.kr/news/articleView.html?idxno=719485
그러니까 굳이 취업청탁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굳이 업체가 비도덕적이지 않더라도, 이미 외부용역화 된 시점에서 대중이 떠올리는 공정성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대중이 생각하는 공정성이란 수능이나 공무원시험, 각종 고시시험과 궤를 같이하는 객관성인데 외부민간용역업체에 직원선발권이 넘어간 시점에서 객관성은 물건너간다.
바로 이 부분이 기간직 교사 전환 논란과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교사 쪽은 이미 임용고시를 통해 객관성있는 채용수단을 쓰고 있는 와중에 전환문제가 터진반면, 공기업 외주용역화 된 일들은 업무가 통째로 외부로 넘겨졌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시험공부하는 취준생들을 팔아 정규직전환을 문제삼는 사람들이 있다면 한번 물어보자. 원래 이 자리들은 시험으로 들어가던 자리들이었는데, 외부용역화로 떨어져나가면서 시험TO가 없어졌을 때도 지금처럼 시험준비하는 취업준비생들을 생각해주었느냐고.
직원들의 거센 항의를 받은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00622500221
다만 현재 있는 사람들 대우는 그대로 두고 신규채용만 정규직 대우를 해주자- 라고 할 수는 있다. 문젠 전술했듯 이 자리들은 고난이도 기술이나 고도의 지식이 요구되지않는다. 대부분이 육체노동이며 지능보다는 경험에서 비롯된 숙련도가 성과에 영향을 많이준다.
현재 있는 사람들을 해고시키고 새로 채워넣는다면 모를까, 신규한테만 따로 적용하면 숙련도 높은 사람이 안좋은 대우로 선임이고, 숙련도 낮은 신규직원이 더 좋은 대우를 받는 하극상일어날만한 이원화가 벌어진다. 시험공부하는 취업준비생들 입장에선 감정적인 불만이 있을 수는 있겠으나, 어차피 대우가 좋으면 인맥채용이고 대우가 안좋으면 기피하는 자리들이다. 그렇기에 정규직 전환되면서 시험채용으로 바뀌는 게 더 이득이므로 정규직전환반대에 큰 영향을 줄 정도로 거셀 수가 없다.
6개 발전공기업, 채용보다 ‘외주’ (2018년)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81226004008
2단계 정규직 전환을 한다고 했을 때, 본사 직고용 정규직 vs 자회사 정규직
문젠 2단계인데, 1단계와 달리 전환대상자를 옹호할만한 근거가 훨씬 약하다. 일단 자회사더라도 공기업 정규직이면 이미지가 좋다. 물론 일부 퇴사율이 높은 곳도 있긴하다만 전반적으로 민간기업보다 더 좋은 안정성을 가졌다고 여겨진다. 따라서 1단계처럼 열악한 대우를 개선하자는 주장이 약화된다. 그리고 자회사는 용역업체와 달리 상대적으로 채용과정이 투명하기때문에 인맥채용문제에서도 자유롭다. 강원랜드 채용 논란에서 보듯 공기업이라고 채용과정에 잡음이 없는 것은 아니나 민간에게 맡기는 것보단 낫고 정 신뢰가 안되면 100% 시험으로 바꾸고 면접은 요식절차로 만들면 그만이다.
그럼에도 자회사 정규직 반대가 목소리가 클 때가 있긴한데 크게 두 부류다. 하나는 '위험의 외주화' 문제다. 위험한 일은 본사 바깥에 맡겨놓고 사고터지면 나몰라라, 그리고 본사가 안전책임에서 나몰라라할 수 있는 만큼 평소 감시감독에 소홀하게되어 또다른 사고를 부른다는 악순환 논란이다. 대개 본사 - 외부민간업체 간 나몰라라하는 게 유명하지만, 실은 본사 - 자회사 간에서도 이게 터진다. 위험한 업무는 본사가 직접고용해야 안전사고, 특히 사망사고가 줄어들 수 있다는 논리다.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6216185&memberNo=9028903
다른 하나는 기존 자회사와 본사 간의 대우차이가 너무나도 심할 때다. 한국공항공사를 예로 들면 작년 국정감사에서 본사 직원들은 80%에 가까운 연차사용률을 보였으나 공항서비스 자회사 직원들은 54%정도에 그쳤던 것으로 나타났다. 자회사 쪽의 근무체계가 3조 2교대여서 연차쓰기 어려운 구조였기때문이었다. 평균연봉도 2배이상 차이났었다. 자회사의 업무가 본사의 '주 업무'와 거리가 있으면 그나마 괜찮은데, 본사의 '주 업무'라고 보일만한 것들을 자회사에 밀어넣고 대우차이를 심하게 만들어놓으면 '힘든 일들은 자회사 쪽에 다 떠밀어놓고 자기들은 막대한 혈세를 받아간다'는 차별논란이 벌어진다.
본사 - 자회사 차별 얘기 나오면 본사 입사 스펙이나 시험성적이 꼭 언급되곤하던데, 사실 납세자나 소비자입장에선 입사자 스펙이나 시험성적따위 알 바 아니다. 같은 일이면 싼 값에 해주는 게 좋다. 채용과정이 불공정하거나, 근로자 임금이 낮거나, 고용이 불안정하거나해서 사회논란 생기는 수준만 아니면 된다. 납세자나 소비자에게 과잉스펙은 거품임금을 유발해 불필요한 혈세가 투입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손해다.
정규직 노조 반발에…'비정규직 제로' 1호 공기업부터 노·노 갈등(2017년)
https://www.hankyung.com/society/article/2017111365041
따라서 이 두가지에 해당하지않는 경우는 대부분 자회사전환 쪽으로 흘러간다. 노노갈등요소가 있기때문이다. 그러니까 외부용역업체에 종사하던 사람들을 본사직고용으로 끌어올릴 경우, 인건비 예산을 잡아먹고 기존 본사 직원들의 연봉인상에 피해가 간다는 것. 성과급을 나눠먹어야할 수도 있다.
취준생을 중심으로 한 역차별논란도 이 연장선상에 있다. 본사가 부담하는 전환비용을 기존 본사 직원들의 대우를 낮춰해결할 수도 있지만, 신규채용TO를 줄여 메울 수도 있다. 그래서 취준생 전반에 직고용 정규직에 대한 불만이 깔려있지만 그 중에서도 유독 고스펙자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불만을 표출하는 게 이 때문이다. 미래의 본사노조원이기도 하고.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jobkorea1&logNo=221313614899
공기업 본사 노조의 발언권이 거의 인정되지않던 도로공사 정규직 전환같은 케이스도 있긴했다. 하지만 그건 김대중 ~ 이명박 정부 시기 톨게이트업무를 외부용역화 시킨 뒤, 본사 퇴직자가 사장인 업체를 선정하고, 심지어 그 본사 퇴직자 사장조차 바지사장으로 두고 용역업체 근로자에게 도공본사가 직접 업무지시하는 미친 짓을 저지른 예외적인 경우다.
이게 왜 문제가 되냐면 대우도 대우다만 일은 일대로 직접시키다 사고났을 때 '우리직원 아님 ^^'할 수 있고 심지어는 대형사고의 경우 용역업체를 폐업시켜 책임회피할 수 있기때문이다. 결국 대법원한테 직고용하라는 판결을 얻어맞았는데 이 시기 직접 업무지시한 사람들 중엔 본사 직원들도 있었을테니 공범이었던 셈. 따라서 본사 기존직원들이 추가 인건비 감축 압박을 받든말든 알 바 아니었다. 되려 니네때문에 톨게이트노동자 전환비용들게 생겼으니 본사 직원 월급 감축해서 스스로 책임지라고 납세자들이 화내도 될 일이었다.
http://m.airtoday.kr/news/articleView.html?idxno=5191
어쨌든 결국 핵심은 노노갈등(+ 취업준비생)과 추가비용에 부정적인 납세자의 반발을 어떻게 조율하느냐인데, 이즈음에서 '왜 외주용역화 구조가 시작되었는가?'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 단도직입적으로 인건비문제였다. 그럼 왜 업무단위로 잘라서 외주화를 시켰는가? 그야 일괄적으로 임금감축을 시도하기 힘들었기때문이다.
그렇기때문에 일부 관리업무, 사무업무, 핵심업무 직원을 VIP(귀족노조란 말이 여기서 나왔다)로 두고 나머지는 한도치까지 임금과 고용안정성을 깎아내린 것이다. 그래서 근로자 간 격차가 벌어진 것이고 이 격차는 외주화로 튕겨나간 사람들의 반발을 누르는 데 도움이 된다. 지금도 직고용한다니까 현직 본사 정규직 노조는 총력투쟁을 선언하고 반발해주고 있다.
인천공항, 코로나19 영향으로 여객수요 97% 급감 2003년 이후 처음으로 적자 기록 전망
http://www.journal25.com/news/articleView.html?idxno=43669
그런데 정규직 전환 추가비용에 반발한다는 것을 뒤집어 생각하면, 이미 본인들이 보기에도 현재 본사 대우가 오버페이 상태이고 삭감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 논란에서 납세자나 일반대중들을 등에 업는 건 가능하다. 이 사람들에게 자회사전환이든 본사직고용이든 둘 다 좋은 상황을 만들면 된다.
구체적으론 전환대상자를 자회사로 보내는 대신, 현직 본사 정규직 노조에게 임금 삭감 동의를 받으면 된다. 안그래도 이 인천공항공사는 코로나 19때문에 실적악화가 전망되고 있다. 마침 현직 본사 정규직 노조는 혈세 낭비를 초래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이 납세자 혹은 일반시민이라면, 국가 재정을 걱정하는 본사 정규직 노조의 애국심을 받아들여주시는 건 어떠신지? 가령 본사 노조가 원하는대로 보안요원 자회사 전환 <-> 17년만의 인천공항적자를 극복하기위해 본사 직원 연봉 20% 영구적 감축같은 제안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