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사건 초기 더불어민주당에게 가해진 몰매는 딱 잘라말해 쌤통이었다. 미투 운동 국면에서, "단순히 지목받았다는 이유로 성급하게 가해자로 낙인찍으면 안된다"는 만류 목소리들이 있었다. 그런 말을 무시해왔던 게 여성계의 미투운동이었고 그러한 미투운동을 더불어민주당은 옹호해왔다. 하지만 자기네 편이 가해자로 지목되자 피해호소인이란 말로 방어를 했다.
이러한 저항을 예측해서인지 고소 대리인 쪽은 증거를 한꺼번에 풀지 않았다. 조금씩 약한 것부터 풀었고, 지금까지도 풀지않은 증거들이 있을 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 여성표 포기못한답시고 애매하게 여성계 페미니즘과 계속 손절안하다가, 그렇게 모은 여성표를 대선 즈음에 공개되면 한방에 다 잃을 수 있을 정도로 묵직한 게 남아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사건 초중반 피해호소인이라는 말에 긍정한 모든 사람들이, 모두가 정치적 이유로 피해호소인 단어에 긍정적이었던 건 아니었다. 박원순을 편들기위해, 또는 더불어민주당을 편들기위해서가 아니다. 특히 정치색이 약한 사람들입장에선 단순히 "현재까지 나온 증거가지곤 확실하게 가해자/피해자라고 규정하진 못하겠다." 일 뿐이다. 피해주장을 거짓말로 딱자른 게 아니다. 어쩌면 지금까지도 증거가 모자라보인다는 이유로 피해호소인이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런데 고소 대리인측은 피해호소인 단어사용에 긍정한 사람들을 한데 묶어 "2차 가해자"로 공격했다. 20대남 30대남이 왜 저토록 결집할 수 있었으며 왜 페미니즘이 끝물 소리를 듣고 있는 지 그대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단순히 지목받은 사람을 가해자로 못박기엔 이르다는 의견을 냈을 뿐인데, 저사람이 가해자라는 자신들의 의견에 동조하지않았다는 이유로 2차가해자로 공격받은 것이다.
야권에서 민주당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피해호소인이 법률에도 없는 무근본 단어니까 피해자라는 용어가 맞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야 같은 미투운동을 두고 자신들에게 불리해지자 태도를 싹 바꾼 더불어민주당은 분명 비난대상이어도 된다. 하지만 피해호소인이란 단어 그 자체가 잘못되었을까?
현실에선 엄연히 무고죄가 있고 무고사례가 존재한다. 사회에선 피해자의 반대말을 가해자로 여기니까 피해자라는 말을 너무 빠르게 써버리면 무고한 사람을 너무 일찍 가해자로 낙인찍을 위험이 생긴다. 만약 여성단체나 여성계가 피해호소인은 그르고 피해자만이 옳다고 주장하면 이해는 간다. 왜냐하면 여성계 쪽은 무고죄폐지를 주장하고 있기때문이다. 무고죄를 폐지하자고 주장하면서 성급하게 낙인찍을 수 있다고 피해호소인을 쓰자고하면 앞뒤가 안맞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김부겸 국무총리 임명을 두고 국민의힘은 “‘피해를 호소하는 고소인’이라 하던 2차 가해자를 국무총리로 지명하다니 문 대통령은 국민의 분노를 조금도 느끼지 못한 것인가”를 공식적인 논평을 내놓았다. 단순히 증거가 모자른다고 생각했을 뿐인 사람들을 가해자라고 모욕당하게 만들었던 2차가해자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물론, 더불어민주당의 뒤바뀐 태도를 지적하는 게 아니라, 마치 피해호소인이라는 단어가 잘못된 것처럼 이야기한다. 선거기간 때야 서로 필요하면 비방도 하는 시기이니 그럴 수 있다쳐도 선거 끝나고도 이런다.
이런 유형의 사건이 다음번에도 정치인을 대상으로 벌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일반인끼리의 분쟁일수도 있고, 보는 사람마다 유죄다무죄다 갈릴 수도 있고, 사람에 따라 증거가 충분하다 부족하다 갈릴 수 있다. 심지어 재판까지 끝났는데도 재판이 옳다그르다 싸움나기도한다. 제2의 보배드림 곰탕집 사건이 터졌을 때, 국민의힘은 피해호소인 단어를 쓸까, 아니면 피해자 단어를 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