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후보의 유치원 발언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현 대한민국의 학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만 6세부터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학제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 박근혜 정부 시절 누리예산이 앞에 붙으며 유치원 어린이집에 대한 국가의 역할이 강화되었다.
그리고 안철수 후보는 지난 2월에 만 3세부터 유치원 2년, 초등학교 5년, 중학교 5년, 직업학교(전문대) 2년, 대학교 4년 학제개편을 제안했다. 누리예산을 줄 게아니라 아예 유치원 2년부터 중학교 5년까지 의무교육으로 하자는 이야기였다. 의무교육이기때문에 당연히 유치원 교육은 국가부담이 된다.
의무교육이되면 앞으로는 국공립유치원을 늘리는 방향으로 갈텐데, 그렇게되면 지금 운영 중인 사립유치원이 문제가 된다. 사립유치원을 공교육체계에 편입시켰을 때 운영권, 이익 침해 논란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그래서 사립유치원 독립운영을 보장하고 운영비용을 보조하며 대형 단설유치원은 자제하겠다고 설득을 한 것이다. 일단 사립유치원에 보조금을 주어 의무교육에 편입시키고, 병설유치원을 늘려 엄마들이 무료로 유치원에 보낼 수 있게 국가가 나서겠다는 발상이다.
논란이 커지자 안철수 후보는 대형 병설유치원 자제가 아니라 대형 단설유치원 자제라는 해명을 내놓았다. 이 발언을 한 행사는 2017 사립유치원 유아교육자 대회였다.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대형 병설유치원 자제 발언이 대형 단설유치원 자제로 바뀐들 설득시도/타협시도라는 큰 틀에서 벗어나지는 않는다. 다만 공립유치원이용률을 축소하고 사립유치원 확대하는 거 아니냐는 의혹에 대한 해명은 된다.
포커스는, 사립유치원과 국가의 관리감독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느냐다. 단기적으로는 무상교육을, 장기적으로는 국공립과 사립의 운영비용을 상호대조시켜서 비효율성을 제거하겠다는 이야기인데 사립유치원이 악질적으로 행동하고 관리감독이 제대로 되지않으면 국가 세금만 나가고 교육의 질은 엉망이 된다. 전임 정부가 경제민주화 공약을 창조경제로 파기한 이후, 과연 유권자들은 이 상호대조를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을 것인가? 사람들은 국공립 유치원은 세금이 비효율적으로 많이 들어간다고 안 후보의 입장을 좋아할 수도 있고, 무상교육한답시고 세금으로 사립유치원들 배만 불리고 교육의 질은 엉망이 될 것이라며 싫어할 수도 있다.
http://www.ccdaily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908924
유치원 교육 표준화는 국공립유치원에 떨어져서 울며겨자먹기로 사립유치원 보내는 사람들이야 환영하겠지만, 보수 진영이 이런 사회주의 성향이 짙은 정책을 좋아할 리 없다. 더구나 국가의 역할이 커지고 기업형 사립유치원이 타격을 받는 방향이라면 신자유주의가 주류인 한국의 보수진영은 이를 끔찍히 싫어할 것이다.
민주당 경선이 끝난 이후, 문 후보 지지층에서 지나치게 양자대결로 몰아간다며 불만어린 목소리까지 나왔다. 그런데 이번엔 역으로 특정 키워드를 중심으로 공세에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다. 대형 병설유치원 신설 자제와 사립유치원 독립운영 보장은 안철수 후보가 말한 것 중에서 보수 측 키워드만 쏙쏙 뽑은 거다. 보수 진영이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문재인 후보가 싫기때문이다. 처음에야 일방적인 게임이어서 물불안가리고 안철수 편을 들어줘야했지만, 이제는 양자대결 승리가 거론될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 당선되고 싶으면 역선택 주자답게 굴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반기문 후보의 "보수의 소모품 되라는 요구 양심상 받아들일 수 없었다" 발언 연장선상에 있다.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7040738511
지금 국민의당은 국회 내 중소 정당이고 안철수 후보는 국민의당 내에서도 자기세력이 강하다고 볼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러다보니 보수 측의 역선택을 두고 최순실 책임론을 경감시켜 줄 만만한 사람을 밀어주는 게 아니냐는 소리가 나오고 있으며, 당선 후 질질 끌려다니거나 제2의 3당합당이 일어나는거 아니냐는 공세에 노출되어 있다.
이번 병설유치원 - 사립유치원 논란은 안철수 후보를 둘러싼 그런 추측들이 얼마만큼이나 신빙성있는 지 알아보는 첫 잣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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