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고 아랫쪽 유리잔들은 몽땅 깨졌고, 그 뒤엔 윗쪽도...
낙수효과 무용론이 등장할 때마다 대기업 공장이 문을 닫으면 낙수효과가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라는 투의 반박이 등장하곤 한다. 하지만 곧 큰 반감에 부딪치곤 하는데 그런 투의 반박은 한국에서 낙수효과가 본격적으로 탄력받게 된 배경을 무시한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낙수효과 자체를 논한다면 옳을지도 모르지만 한국에서, 특히 정치적인 측면에서 낙수효과를 논할 땐 IMF시대라는 시간선을 빠뜨리면 안된다.
IMF 이후, 한국은 엄청난 강도의 체질개선을 요구받았다. 그리고 그것을 이행하였다. 인간시장에서 사람가격은 점점 더 떨어져갔다. 안정적이었던 민간일자리들은 점점 더 유연화되었지만 유연화된만큼의 금전적 보상이 주어지진 않았다. 더 암울한 것은, 단기적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서 강도가 거세질 예정이었다. 악화된 일자리 환경에 발맞추어 저출산이라는 방어기제가 작동했지만 이미 초과해서 낳은 아기들과 아직 취직연령에 도달하지않은 어린 아이들은? 인간초과공급에 세계화, 기술발전이 더해졌다.

어느 시기에 출생아 수가 확 떨어졌음을 알 수 있다.
http://ranknews.tistory.com/12
해가 갈수록 타오르는 공무원 인기는 이 암울함을 상징했다. 낙수효과는 그 시점에 본격적으로 대두되었다. 당시 연령적으로 허리부분에 해당했던 기성세대 중에는 IMF 구조조정에 피를 본 사람들이 많았고 사회안전망이 부실한 환경에서 이들은 악화된 일자리조차 급했다. 또한 IMF 구조조정 후폭풍 속에서 상대적으로 살아남고, 노동대우를 낮추려는 하방압력을 결속력과 조직력으로 견딘 사람들에 대한 반감도 존재했다. 이는 귀족노조라는 단어에 힘을 실어주게 된다.
한편 IMF 이후 사회생활을 시작했거나 앞으로 시작할 예정인 세대들은 절망에 휩싸여 있었다. 경제상황과 자신들에게 주어질 일자리의 질이 날이 갈수록 암울해질 것은 눈에 훤했는데 복지확대는 고사하고 구조조정이 너무 가혹하다고 주장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복지확대정책은 빨갱스러운이라는 수식어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레드프레임 논리로 정신무장한 고령층들이 많았다. 구조조정이 가혹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한번 더 IMF를 겪고싶냐는 공세에 노출되어있었다. 한국은 IMF에서 빠르게 졸업했지만 후유증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http://news.tongplus.com/site/data/html_dir/2015/09/03/2015090301714.html
10~20년 전이었으면 전부 '빨갱스러운'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을 답변들.
우파에서 '문꿀오소리'를 중심으로 맹목적이다, 교조적이다 비난해도 여론반응이 시큰둥한 건
그게 아무리 심해도 최소 20년 이상 울궈먹은 빨갱이 프레임만 하겠느냐는 정서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시점에 메스컴들이 박정희 경제신화를 이들에게 들려주었다. 인터넷에서는 전두환, 노태우, IMF 이전 김영삼시절 전설과 같은 호황기스토리들이 회자되었다. 이런 것들은 당시 청년들에게 솔깃할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당시 청년세대들은 학생시절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성인이 된 이후에도 '호황'이란 단어를 한번도 겪어보지못했기때문이었다. IMF이전 세대들과 달리 이들에게는 그리워할 과거조차 없었던 것이다.
이 흐름을 중심으로 정치적 이미지를 구축하자 낙수효과는 대박을 터뜨린다. 신자유주의, 작은정부, 반노조성향, 친기업, 세금감면. 그리고 이를 추진할 강력한 힘을 가진 정부모델이 지지를 받았던 것에는 바로 이런 배경이 작용했다. 당시 청년세대들이 보수정당을 열렬히 지지해 좌파진영으로 하여금 이번 세대는 이상할정도로 순종적이라고 좌절시킨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그러니까 한국에서 낙수효과란 단순히 대기업이나 부자들이 있어야 아랫사람들도 먹고산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연령적으로 봤을 때 당시 허리를 담당했던 사람들에게는 '최대한 일자리늘려서 최소한 먹고 살게는 해줄게'라는 약속을 한 것이었고, 당시 청년세대에게는 '너희들에게도 호황이라는 단어를 맛보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한 것이었다.

문제는, 지금 시점에선 약속들이 깨져버렸다는 것. 당시 허리세대는 이제 은퇴를 앞두게 되었는데 열악한 일자리 환경 속에서 암울한 노후걱정을 해야할 상황에 놓였고, 당시 청년세대는 대한민국의 허리를 담당해야할 나이가 되었으나 엄청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리고 이제 곧 선거연령에 도달할 예정인 IMF 이후 태어난 유권자들은 당시의 유권자들을 어떻게 생각할까. 특히 현 2030세대들은 자신의 이익을 직접 강력하게 주장하지않고 국가가 잘해주겠지 혹은 대기업들이 돈많이 벌면 떨어지는게 많을 거라고 순종적으로 움직여 이기적이라는 비난을 피하고 착한 사람으로 남았으나 최악의 어려움을 겪고있다. IMF 이후 출생한 세대들이 그들을 호구라고 생각한다면, 앞으로 이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이들의 노선이 어떻게 될지는 어렵지않게 예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