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의 기본소득 논의
http://news.bizwatch.co.kr/article/industry/2017/01/25/0013
기본소득제 논의는 유럽과 미국에서 신흥정당세력들이 기존 정치세력들을 몰락시키며 시작되었다. 그리고 언론들은 이들을 극좌 포퓰리즘 정당/ 극우 포퓰리즘 정당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좌/우라고 지칭하기엔 애매한 부분이 굉장히 많았다. 기존 좌우통념으로 바라보았을 때 이 정당들은, 사회정책을 비롯한 골격은 우파적색채를 띠면서 유독 복지정책은 파격적인 좌파적색채를 가지고있다. 심지어 신흥정당에 합류한 사람들은 기존 보수우파정당지지자들이 많았다.
그래서 어떻게 이런 짬뽕정당들이 나타날 수 있었는지 의문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어중간하게 못사는니 아예 못사는 것이 낫다'라는 등장배경을 안다면 놀라운 일이 아니다.
88만원 세대는 찢어지게 가난해서 못먹고 자란 사람들일까?
'어중간하게 못사는니 아예 못사는 것이 낫다'의 화자는 당연히 빈민이 아니다. 아예 못사는 게 아니니까 저런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중산층도 아니다. 중산층은 지속적인 노동활동이 없어도 생활수준이 크게 하락하지않는 사람들이다. 과거 정년이 보장되는 곳이 많았던 시절엔 지속적인 노동활동이 보장된 사람도 중산층이라고 지칭하긴 했었지만 요즘은 공무원 정도를 제외하면 평생직장개념이 사라졌다. 따라서 수입이 끊겨도 버틸 자산이 많은 사람들인 것인데, 이런 사람들이 '어중간하게 못사는니 아예 못사는 것이 낫다'같은 말을 할리가 없다.
즉 이 말의 화자는 <중산층과 빈민 사이에 있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이 빈민과 연대하면서 기본소득제같은 파격적인 공약이 활성화 될 수 있었다.
원래 빈민들은 주류 정치세력이 되기 어렵다. 제정신박힌 기득권세력이라면 빈민들이 주류정치세력으로 폭발하게 놔두지 않는다. 빈민들의 불만이 정치화되지않도록 강압책을 쓰는 한편 선별적 복지정책같은 당근책을 쓴다. 하지만 <중산층과 빈민 사이에 있는 사람들>이 추락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국도 폭발할 기미가 있었으나 등록금문제를 세금으로 덮어 10년의 시간을 벌었다.
이걸 가늠해볼 수 있는 잣대가 바로 '등록금 문제'다. 왜냐하면 <중산층과 빈민 사이에 있는 사람들>을 가장 잘 대표하는 집단이 바로 대학생-청년들이기 때문이다. 고등교육을 받을정도로 가난하진않으면서도 부모가 가진 자산으로 인해 선별적 복지정책에선 높은확률로 빠지는 집단.
경제상황이 좋다면 등록금 인하 투쟁이 벌어졌을 때 빈곤계층은 대학생들에게 배부른 투정을 한다고 냉소를 보낸다. 반대로 대학생들은 빈곤층의 어려움에 잘 공감하지못한다. 사실 그 이전에 등록금 분쟁이 잘 일어나지도 않는다. 양질의 일자리에 들어가 투자한 등록금을 회수하면 그만이기때문이다. 하지만 고용상황이 나빠지면 이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대학생들은 빈곤을 남의 일처럼 여기지않으며 파격적인 복지정책에 지지를 보낸다. 빈민들도 대학생 등록금 문제에 냉소가 아닌 지지로 화답하며, 파격적인 복지정책이 대학생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가도록 힘을 보태준다. 그리고 이 둘은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들이 '우리들'의 일자리를 빼앗아갔다는 연대의식으로 뭉친다.
그러면 이를 중개할 정당이 등장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대학생들은 특정정당을 통해 파격적인 복지정책으로 빈곤층에 지지를 보낸다. 빈곤층은 특정정당을 통해 대학생 등록금 문제에 지지로 화답하며 파격적인 복지정책이 대학생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힘을 모아준다. 그리고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들이 '우리들'의 일자리를 빼앗아갔다]는 연대의식을 갖고 특정정당에 표를 모아준다.
https://www.hankyung.com/society/article/202002170705i
따라서 한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문제가 조금씩 수면위로 올라온다는 것은 10년 전 반값등록금 합의가 한계에 도달할정도로 <중산층과 빈민 사이에 있는 사람들>의 사정이 더 악화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외국인노동자문제는 빈곤층의 문제'였'다. 하지만 언제까지 과거형일 수 있을까? 한국사회는 청년들에게 '눈을 낮추라'라는 요구를 많이 해왔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으나 외국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청년들은 눈을 낮췄다. 그리고 눈을 낮춘 뒤엔, 계층의 벽을 넘은 공감과 연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중간하게 못사는니 아예 못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선별적 복지는 힘을 잃는다. 박근혜정부에겐 이 고리를 선제적으로 끊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었다. 파격적인 담뱃세인상이 있었는데, 그 세수를 기본소득재원과 1:1연동시켰다면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도 기본소득을 실험해보자는 요구를 수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박근혜정부의 정치 파트너들은 산업화세대에 대한 보상인 노령연금조차 학을 떼던 사람들이었다. 보다 직접적으로 2016년 초 외국인 고용 부담금이 추진되기도 했다. 하지만 정치 파트너들의 반대로 표류했다. 그 해 끝엔 최순실게이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4년이 늦은 만큼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미래통합당 사람들은 자신들의 추락을 최순실게이트와 박근혜 탄핵사건으로 여겼지만, 그 여파가 가라앉은 뒤에도 지지세를 회복하지못했다. 최순실게이트와 박근혜 탄핵사건은 <어중간하게 못사는니 아예 못사는 것이 낫다>는 사람들이 폭발한 방아쇠였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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