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전 대통령이 지병 악화로 별세했다. 2000년을 기준점으로 잡았을 때 21년 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고, 21년 후 10월 26일에 노태우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다. 우연치고는 기묘하다.
언론의 단어쓰임은 '서거', '별세', '사망'으로 엇갈리는데, 통상적으로 사망<별세<서거 순으로 격이 높아진다. 관례대로라면 선거에 의해 선출되었던 전직 대통령이기때문에 '서거'가 맞긴한데, 1212 군사쿠데타 논란 등을 감안하면 '사망'도 잘못됐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도저도 애매해 적당히 높이려면 '별세' 정도가 무난하다.
문제는 국가장 시행과 국립묘지 안장 여부. 국회 운영위 국정감사 도중이었던지라, 국가장 국립묘지 안장 질의가 빠르게 이루어졌다. 국가장이야 '전·현직 대통령, 대통령 당선인, 국가 또는 사회에 현저한 공훈을 남겨 국민의 추앙을 받는 사람'이면 가능하고, 국립묘지 안장도 '국가장으로 장의된 사람'이라는 기준을 충족하면 되니까 유족동의와 청와대의 결단만 있으면 할 수는 있다. 일단은 '장례절차와 국립묘지 안장 모두 정무적 판단이 필요하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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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무리해서 강행해 평지풍파 일으켜야하나 싶긴하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전두환 전 대통령에 비해 조금이라도 더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것은 일단 좋든싫든 국민 손으로 선출했던 대통령이고 추징금도 완납했단 점도 있지만, 아들인 노재헌 씨를 통해 사죄의사를 밝혀왔기때문이다. 문제는 회고록에서 '광주사태의 진범은 유언비어' 항목을 끝내 바꾸지않았고, 지병으로 인해 어쩔 수 없었다지만 아들의 참회도 결국 '대리사과'였던지라 진정성 논란을 피해가기 힘들다.
따라서 괜히 국민통합 차원에서 국가장 및 국립묘지 추진했다가 일이 잘못흘러가면 국민통합은 고사하고 국민대분열만 야기할 수 있다. 그나마 남아있던 고인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마저 날아갈 수 있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안했으면 하지만, 굳이 꼭 하겠다면 '전직 대통령' 예우보다는 장례예우를 '국무총리 급'으로 가정하고 축소/단축해 치르는 절충안 정도는 있겠다. 국가장 장례기간은 원칙적이론 5일이나 코로나 19라는 현실적 위험도 무시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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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침 노태우 전 대통령은 '국무총리급' 일 때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긍정적인 평가를 할 때 가장 먼저 나오는 6.29선언 정국. 그때 그는 민주정의당의 대통령 후보 및민주정의당 총재였다. 지금이야 여당 대표 의전은 부총리급이지만, 제 5공화국정치제도를 감안하면 그보다 더 위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88올림픽도 노태우 정부 업적으로 꼽히는데 노태우 전 대통령이 1983년 ~ 1986년 서울올림픽 조직위원장이었다.
국립묘지법을 손질할 기회이기도 하다. 현 '국립묘지법' 상 국무총리는 국립묘지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래서 예전에 김종필 전 국무총리 사망 때 이 문제가 살짝 언급됐었다. 생전 지위만으로 국립묘지에 들어 갈 수 있는 것은 대통령, 국회의장,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까지다. 명분 상으론 행정부(대통령), 입법부(국회의장), 사법부(대법원장) 3부요인 + 독립기관(헌법재판소장)으로 4부 최고책임자들을 명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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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선거에서 나오는 정통성을 감안했을 때, 전국민이 모여 선출한 대통령을 다른 삼부요인과 동급으로 다루는 게 맞느냐는 문제가 생긴다. 실제 국가주요요인을 언급하는 말 중에 '5부 요인'이라는 것이 있다. 국민들이 직접 선출한 대통령을 제외하고 각 부에서 의전서열이 제일 높은 '국무총리, 국회의장, 대법원장' + 헌법기관인 '헌법재판소장,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을 한데 묶는다.
물론 공식적으로 '국무총리'를 맡은 적은 없었기때문에 국무총리 자격으로 들어가진 못한다. 다만 '국가장으로 장의된 사람' 자격으로 들어가고 이후 전직 국무총리가 안장될 때 규격이나 대우를 정하는 첫 케이스가 되는 건 가능하지않겠냐는 이야기다.
일단 유족들은 파주 통일동산을 우선적으로 고려 중인 것으로 발표났다. 고인의 대북북방외교 업적에도 딱 알맞은데 다만 장묘시설이 아니라 별도의 협의가 필요하다. 고인의 뜻을 존중한다는 의미도 있고 정치적 논란을 가장 조용히 피할 수 있는 방법이므로 이쪽을 지지하는 목소리도 높겠다.
파주 통일동산은 원래 장묘시설이 없다. 파주 지역주민들만 찬성을 얻어낸다해도, 새로 조성해야하는 비용이 추가로 더 들 수 밖에 없다. 국가장 할 돈으로 장묘시설을 새로 만든다고 공표하면 큰 분쟁없이 넘어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