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과거로 돌아가면 한국의 페미니즘은 90년대는 물론이고 00년대 초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는 욕을 얻어먹었었다. ‘나는 페미니스트다!’라고 외치는 사람들은 다른 약자들과 연대하지 않는다는 비난이었는데, 태생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고등교육이 보편화되기 전, 성평등을 논할 수 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한정되었다. 지금의 ‘유리천장’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고위직을 가지 못한다는 유리천장은 고위직을 노릴 수 있는 조건을 어느정도 갖췄을 때나 쓸 수 있는 단어이다. 육아 이전에 출산, 출산 이전에 결혼, 결혼 이전에 취직이 힘든 유리천장 근처도 못가는 사람들에겐 의미없는 단어다.
90년대가 시작되었는데도 대학진학은 10명 중 3명만 할 수 있었다. 4년제만 따진 것도 아니고 전문대학, 산업대학까지 포함시켰는데도 말이다. 그 이전엔 더 적었다. 이런 시대에서 페미니즘은 요즘 유행어로 말하면 최소 ‘은수저’였거나, 정말 어마어마한 노력과 특출난 능력으로 바늘구멍같은 기회를 잡은 소수의 여성들이었다. 이들은 분명 고위층을 노릴 수 있는 세계에서는 약자였지만, ‘아랫것들’과는 구분이 있었다. 그러니 다른 사회적 약자들과 연대가 이뤄지기 힘든 게 당연했다.
한편, 아랫 쪽 사람들도 ‘여성’을 외쳤다. 하지만 위의 페미니즘과는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이들은 눈앞의 생계, 노동문제에 직면해야했다. 그러다보니 이들이 외치는 여성은 여성운동이 아닌 노동운동으로 기록되었다.
https://taxfoundation.org/america-has-become-nation-dual-income-working-couples/
태생부터가 여성전체가 아닌 소수를 위해 존재했던 한국의 페미니즘. 이 사상이 여성전체를 위하는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나게 된 건 과거 이들이 유교적 악습을 철폐하자는 운동에 관여했기때문이었다. 한국은 폭넓은 사회적 공감대에 힘입어 끝내 유교적 차별을 없애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호주제 폐지는 어마어마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었다. 문젠 그 이후였다. 공동의 적은 사라졌는데 여성계에 걸려있는 자산들은 그대로였다. 조직을 지탱할 수 있는 여성예산, 유사 다른 조직들과 연결고리를 만들 수 있는 일거리 배분권, 특히 제도적 차별 철폐가 달성되었는데도 여전히 페미니즘이 여성전체를 위한다는 아랫쪽의 착각은 가장 큰 자산이었다. 유교적 악습과 맞서싸우는 투사 이미지가 여전히 남아있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한자리 해먹기 필요한 모든 요소가 갖추어져 있었다. 이 재료들을 이용해 보수 기득권과 아랫계층 여성들을 중개하면서 수수료로 자신들이 직면한 유리천장을 약화시키고 감투를 얻고 예산을 얻어나가며 조직을 확장시켜나갔다.
IMF라는 재앙은 가계소득을 흔들었고 기혼여성들이 인력시장에 쏟아져나왔다. 너무나도 급작스러운 변화였다보니 이들을 위한 육아같은 사회적 인프라가 갖춰져있을리 없었고 불만이 고조되었다. 페미니즘은 이런 상황에서 매우 쓸만한 종교적 도구였다. 이들은 교섭을 중개하거나 일하는 여성상을 긍정적으로 만들었다. 값싸고 성실한 노동력을 원하던 신자유주의와 이해가 맞아떨어졌다. 유교적 악습에 맞서던 페미니스트들은 그렇게 페미 자영업자가 되었다.
신자유주의 시대 이후 보수 기득권과 (구)페미니즘의 관계는 대립적이지 않았다. 고을수령과 이방에 가까웠다. 그래서 귀족이니 과격이니 온갖 견제를 받아야 했던 노동조합들과 달리 페미 자영업자들은 지속적으로 세력을 확장할 수 있었다.
IMF이전 어지간한 기업은 평생직장이었다. 자기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가계는 외벌이로 가정을 꾸릴 수 있었다. 출산과 육아는 힘든 일이다. 일과 병행하는 것은 쉽지 않다. 맞벌이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IMF이후 많은 여성들이 일터로 내몰렸다. 페미니즘은 가사가 여성의 자아실현을 구조적으로 가로막고 있다며 일하는 여성을 치켜세웠다. 세월이 흘러 노동초과공급시대가 왔다. 청년세대는 성평등은 고사하고 저임금, 고용불안에 고통받고 있다. 일하는 여성이 당연시된 지금, 페미니즘이 약속한 자아실현은 어디로 갔는가? 수저론에 의하면, 그런 낭만은 금수저, 은수저들만의 것이었다.
2010년 중반을 넘어가게 된 지금, 과연 과거의 가정주부들보다 지금의 여성들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지? 한국의 페미 자영업자들은 부도수표를 막아야하는 처지에 놓였다. 구페미니즘은 이를 일부라도 인정할 수 없다. 유교적 악습에 맞서싸운 투사 이미지가 심각하게 손상되기 때문이다. 또한 인력이 지나치게 남아돌게되어서 중개업 일거리가 통째로 사라질 위기를 맞게 되었다. 그래서 분노를 ‘남자탓!"으로 돌리는 한편 '가사노동분담'으로 충돌시켜서 가계 구성원 전체에 노동부담이 늘어난 것을 은폐시켰다. 기껏해야 여성경력단절과 같이 사기업에서 실행되기 매우 힘든 개념에 매달리며 생색을 내고 있다. 인력시장에서 약자에 놓인 여성들에게 전면적으로 힘을 실어주면 고을수령님과 지방유지분들이 노하셔서 페미 자영업자들에게 떨어지는 수수료와 감투가 없어지기때문이다. 페미 자영업자들에게는 떡고물이 더 중요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 수록 이런 기만책도 점차 통하지 않게 되었고 저임금, 고용불안, 청년실업과 같은 경제적 불만 속 젊은 층들이(구시대 페미니즘 입장에선 ‘아랫것들’) 대학 학자금 문제를 시작으로 새로운 페미니즘 열풍을 만들었다. 유리천장이 깨질 수록 유리바닥도 깨진다는 지적에 대해 비현실적인 이야기라고 우기고, 속으로는 '아랫것들'의 사정이라며 유리천장 파괴에 몰두하는 기존의 페미니즘과 비교하면 유리천장같은 멀고 먼 거대담론이 아닌 눈앞 현실적인 문제에 집중하는 신 페미니즘은 훨씬 실용적이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외부인 뿐 아니라 신페미니스트들 스스로도 태생이 다른 두 페미니즘을 구분하지 못했고 그것은 결과적으로 대재앙이 되었다. 결국 신페미니스트들은 상류층 여성이익집단들 어거지에 이용당했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반발을 덤터기썼다. 새로 등장한 페미니즘 측에서 "꿘충"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걸 보면 나름 외부세력에 조종당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긴 한데, 이미 '남자탓'같은 구 페미니즘의 기만책에 속은 시점에서 ‘꿘충’한테 당한 거다.
미국은 IMF같은 극적인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지만 이미 30년 전부터 여성들이 가계소득을 지탱하기위해 일터로 나가기 시작했다. 세월이 흘러 2016년, 45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힐러리는 패했다. 힐러리 클린턴은 민주당 경선에서도 버니 샌더스에게 매우 고전했는데 젊은 여성들에게 (힐러리 캠프 입장에서)배신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힐러리는 유리천장을 말하면서 자신이 당선되면 장관의 반을 의무적으로 여성에게 할당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하지만 미국의 젊은 여성 유권자들은 눈 앞의 학자금 부담에 허덕이고 있었다. 직장여성유권자들에게 급했던 것은 남녀 모두에게 가해지고 있었던 노동임금하방압력이었다. 유권자들에게 힐러리의 말은 얼마나 사치스러운 투정이었을까?
'정치 > 정치'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미 미사일 지침 개정 추진하는 문재인 정부, 탄두중량제한을 500kg에서 1톤으로 (0) | 2017.07.25 |
---|---|
사드 배치 찬성 여론이 왜 힘을 받지 못하는 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는 글 (0) | 2017.06.20 |
2017 프랑스 총선에서 벌어진 대규모 물갈이 (0) | 2017.06.20 |
김무성 캐리어 노 룩 패스 논란 (0) | 2017.05.24 |
북한 미사일 발사 도발과 한국의 세대갈등 (0) | 2017.05.19 |
5년 뒤 대선 재도전하겠다는 안철수, 2018년 지방선거(서울시장)에 출마할까? (0) | 2017.05.15 |
19대 대통령 선거 결과를 제대로 예측한 여의도 연구원 여론조사 (0) | 2017.05.10 |
영남권 신공항이 김해 신공항에서 가덕도 공항으로 바뀔까 - 문재인 제19대 대통령 당선 (0) | 2017.05.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