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의 시간'은 현재진행중이다. 송영길 당대표가 '윤석열도 조국처럼 수사해야한다'를 전제로 사과하고, 조국의 시간을 넘어 청년의 시간으로 가겠다고 말하긴 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그건 조국의 시간을 끝낸 게 아니었다. 남아있었던 두 개의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는 결단을 내렸을 뿐이다.
조국 문제의 남은 선택지는 둘 중 하나였다. 하나는 조국 전 장관 올려치기. 삼성 이재용 부회장이 비슷한 예다. 가령 특사자격으로 백신문제해결에 숟가락이라도 얹었다면 하다못해 언론 평가라도 바뀔 수 있었다. 안바뀔거라고? 그럼 이재용 부회장도 풀어주면 안되겠네? 보수종편언론에서 삼성일가에 불리하게 될 기사가 나오길 바라느니, 차라리 한겨레 경향이 과격페미니즘 비판하는 것을 기대하는 게 더 그럴듯할거고, 환구시보가 시진핑 비판하는 것을 바라는 게 더 확률이 높지 않을까?
다른 하나는 조국 전 장관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동귀어진하는 거였다. 정경심 교수가 징역 4년 나왔다. 4년 받고 나머지 받을 거 받겠다. 그러니 너와 너희 가족도 잘못이 있다면 받게 하겠다...송영길 당대표 발언은 굉장히 살벌한 이야기였다.
일부 조국 지지자들이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반발했었던 이유는 표적잡고 때렸다는 의심때문이었다. 일리가 있는 게 사람들은 표창장이야기가 나오기 전부터 폭발했었다. 분노를 불러일으킨 핵심 키워드는 '무시험 대학 입학'이었다. 더구나 사건이 벌어진 2019년은 스카이캐슬이 방영된 해였다. 이후 대학원 입학 표창장이나 사모펀드같은 이야기가 나오긴했지만 대학입시문제와는 '급'이 다르다.
대학원입시엔 '공정'하게 이루어져야한다는 사회적 기대치가 상대적으로 낮다. 공정? 학비라는 허들부터가 공정하지않다.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이 왜 비용문제로 욕퍼먹는지 생각해보자. 로스쿨 졸업 등록금 5천만원까지 갈 필요도 없다. 입학조건인 대학교 학사학위 4년 등록금만으로도 서민가정에겐 빡빡하다. 사모펀드는 아예 입시문제도 아니었다.
반면 대입은 예나 지금이나 '기회의 평등'의 상징이다. 헌데 딸이 입학한 고려대 전형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이 전형을 두고 입시컨설턴트 출신 패널은 "이 전형에서 IBT가 110점이냐 117점이냐는 큰 의미가 없다"고 인터뷰했다. 즉, 그나마 정량평가인 어학성적점수는 자격요건 정도였고 자소서와 면접이 메인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자소서에서 유학경험, 논문, 인턴 경험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국내 입시교육, 특히 일반고 입시교육만 받은 학생이라면 입학하기 어려운 구조였고, 부유층 자녀들이 해외에서 1~3년 동안 유학을 다녀와 지원하는 전형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조국 자녀가 입학한 건 2010년이다. 그래서 더 문제였다. 차라리 최순실 딸 이화여대 입학논란처럼 집권시기 벌어진 일이었으면, 대학교들이 어쩔 수 없이 합격시켜주었다는 변명이라도 가능한데 조국 딸 문제는 그것도 불가능했다. 사람들은 허위논란 나오기 이전에 이미 '금수저 프리패스 전형', '그들만의 리그'에 뚜껑이 열렸었다. 조국 아들 쪽인 연세대 대학원은 훨씬 상태가 심각했다. 이쪽은 서류자체가 증발했다.
그래서 이 문제는 통상적으로라면 높은 확률로 '조국 사퇴 후 언론이 잠잠해지면 대학원 입시문제로 축소'였다. 조국이 잘못했든 잘못이없든 간에 조국'만'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잘못하면 너도나도 다 죽을 판국이었으니 어영부영 덮는 것.
다만 낮은 확률로 '조국 연세대 고려대 다 박살난다'도 있긴했다. 왜냐하면 입시제도에 대한 분노는 조국 개인 비리와는 스케일이 완전히 다르기때문이다. '먼지털이식 수사', '풀한포기 안남는다', '별건수사', '집요한 적폐수사'같은 비명이 연세대, 특히 고려대 쪽에서 나왔으면 '대를 위해(대학입시개혁) 소를 희생(조국) 하자'고 조국 측이 몰릴 구도였다.
이도저도아니면 '조국 장관직 사수하고 묻어버리기'였다. 이러면 민주당은 분노한 여론을 달래기위해 소잃고 외양간고치기 식 개선법안이라도 많이냈었겠다. 하지만 결말은 셋 다 아니었다. 없던 선택지를 무리해서 골랐다. 언론은 철저하게 조국가족들만 문제가 있는 것처럼 일관했고, 사퇴 이후 대학교들은 조국 가족에 비해 거의 언급되지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이 뚜껑열린 건 조국만 편법써서가 아니었다. 상류층 사회전반이 뒤틀려있다고 본거고, 그래서 총선 때 조국 이슈는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렇게 '조국의 시간'은 조국 전 장관과 민주당의 약점인 동시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아킬레스건이 되었다. "조국가족만 탈탈 터느라 대학교는 못 건드렸습니다." 이걸 어떻게 얘기할까? 조국 자녀 허위입시의혹만 집중수사했다면 모르겠지만 이건 조국 가족에 대한 전방위적 수사였다. '공정'을 앞세워놓고서 대학교는 괴롭힐 게 없었다는 변명은 불가능하다. 아니면 설마 고려대학교는 털어서 먼지한톨 10원한장 안나올 집단인건가?
다만 이렇게되면 더불어민주당이나 청와대가 조국을 냉정히 잘라내긴 더 어려워진다. 어쨌든 표적잡고 팬 정황은 보이기때문이다. 그런 문제를 민주당 초선의원들은 재보궐선거끝나고 엎어버리려했으니 역풍얻어터지는 건 당연지사. 다만 물타기하려고 알면서 일부러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재보궐선거는 부동산정책과 페미니즘에 대한 반발이 메인이었는데 페미니즘책임론 나오면 골치아프니까.
조국 사태는 국민들에게 정말 큰 기회였다. '인적자원투자과잉'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였다. 중학교 교육이 점차 보편화되자 중학입시가 없어지고 그 역할을 고등학교 입시가 이어받았다. 고등학교 교육이 점차 보편화되자 고등학교 입시가 축소되고 그 역할이 대학입시에 중첩되었다.
이윽고 대학교 교육이 보편되었지만 대학교 평가제도는 대입을 대체하지 못했다. 아니 하지않았다. 지금도 대학교 학점제도는 명문 사립대학교들이 못믿겠다고 비난하는 고등학교 내신과 구조적으로 다를 게 없다. 고등학교 내신이 그토록 신뢰하기 어려운 잣대라면 기업들은 대학교 학점제도를 어떻게 바라봐야할까? 어쨌든 이 덕에 학부모들은 계속 고등학교 사교육에 집중적으로 돈을 퍼부을 수 밖에 없다.
지금 이시간에도 수능학원들 간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유능한 강사를 스카웃하고, 학생을 유치하기위한 마케팅을 뿌리고, 인강 가격을 내리는 출혈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경쟁 강사나 학원을 비방하는 알바를 쓰다가 적발되는 사건까지 있었다. 별의 별 피터지는 다툼이 다 벌어진다. 그리고 수요자인 학생들은 돈과 시간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자유롭게 학원과 인강을 골라다닌다.
수능학원들의 모습은 IMF이후 대학교들이 언론을 통해 뿌렸던 자유시장경쟁이념과 똑같았다. 그들은 수능학원들 뿐 아니라 노동시장을 비롯한 사회전반에 유연성이념을 공급했다. 하지만 그래놓고 대학교 본인들은 예외였다. 살아남기위한 학생유치전, 강사스카웃전쟁같은 건 벌어지지않았다. 받은 학생을 업그레이드시켜주는 경쟁을 하는 게 아니라 논술로, 면접으로, 스펙으로, 유학경력으로, 그리고 어쩌면 자소서에 있는 부모배경으로 이미 등급이 좋은 학생을 더 잘 뽑으려했을 뿐이었다.
하다못해 수능의 역할을 이어받을 전국단위 평가제도를 만들어내지도 못했다. 그렇게 수능 25주년까지 시간은 흘렀고 조국 사태가 터졌다. 그리고 언론과 발맞춰 조국가족만 탈탈 털고 대학교는 안건드렸다고 비난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차기대선에 나온다고 한다. 물론 이러니저러니해도 현재 차기대선주자 여론조사 1위는 윤석열 후보다. 결과는 투표함까봐야안다지만, 최소한 현 시점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고 말할 수는 있다. 헌데 그 요인으로 조국문제가 꼽힌다. 과연 '조국의 시간'이 윤석열 후보에게 마냥 좋은 이야기일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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