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대로라면, 조국 전 법무부장관 딸 의사시험 합격이슈를 두고 현 시점에서 가장 크게 다뤄야할 안건은 입학취소여부가 아니라, '이 사건에 맞물린 대학교와 대학원들에 어떤 페널티가 주어질 것인가'이다. 특히 해당 대학교가 계속 학생들을 자기들 마음대로 뽑도록 냅 둘 것인가가 문제다.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이야 어차피 의전원제도 자체가 폐지될 예정이니 제낀다쳐도, 고려대학교가 앞으로도 계속 수시전형, 논술, 면접, 자기소개서, 기타스펙 등으로 학생들을 자기네들 손으로 선발한다는 게 말이 되는걸까?
정시가 무조건 좋다며 수시를 싹 다 폐지하자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수시전형에서 허위스펙을 거를 능력이 없다는 게 밝혀진 대학교들이 주관적인 판단으로 학생을 선발할 수 있도록 놔두는 게 맞는 것인지? 내신성적순으로만 입학시키게 바꾸든, 아니면 수능성적순으로만 입학시키게 바꾸든. 거기다 이번에 문제가 된 전형은 아예 일반 서민가정 학생들이 접근조차 어려워 '금수저 전형'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였다. 쉽게말해 해당 대학교가 학생스펙이아니라 부모스펙보고 뽑았다 소리 들을 사건이었단 거다. 북한에서 출신성분 따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다뤄야할 사건을, 빨리 입학취소안하고 뭐하느냐고 열심히 물타기하고 있다. 그러나 입학취소는 이미 대학교들이 재판최종결과 보고 결정하겠다고 선언했었다. 가만내비둬도 나중에 최종재판결과 나올 때 한번 더 이슈될 게 뻔하므로 그때가서 왜 입학취소안시키냐고 해도 안늦는다. 계속 이런 식이면 재판직후 칼같이 입학취소를 시켰을 때 대학들은 피해자 코스프레 기회를 얻는다. 원래대로라면 엄청난 비난을 받아야할 대학들이, '우린 사기당한거에요! 암 것도 모르다가 뒤통수맞았지만 이제라도 입학취소합니다.'
최순실 딸 이화여대학교 입학 특례 논란과 비교하면 이 구도가 더 명확해진다. 이화여대 체육학과 입학 년도는 2014년으로, 박근혜 정권 전성기였다. 최순실 씨가 박근혜 대통령을 조종했다는 설은 박근혜 정부와 쌈박질하던 보수언론-비박-민주당 쪽에서 만들어낸 프레임이라 쳐도, 최순실게이트 한창 때나 지금이나 키친캐비닛이든 시녀역할이었든, 최소한 최순실 씨가 박근혜 대통령의 총애를 등에 업고 있었다는 것까지 부정할 순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기세등등한 권력자가 요구를 하니 어쩔 수 없었다고 이화여대가 호소할 수라도 있었다.
그러나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딸이 의전원에 입학했던 건 2015학년도였고, 고려대학교 입학한 건 2010년도였다. 하지만 조국 전 장관을 '실세'라고 부를 만한 시기는 민정수석이 된 2017년부터다. 그 이전의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교 교수 직함은 사회지도층에 포함시킬 순 있어도 최순실 씨같은 권력자라고 말할 정도까진 아니다. 심지어 2015년 이전이면 민주당 정부시절도 아니다.
입학비리야 자주 벌어지는 일이지만 국민들이 이 사건에 특히 격하게 일어난 게 이 부분 때문이다. 차라리 민정수석하던 시절에 자녀를 명문대학에 밀어넣었다면 그냥 권력형 특혜시비였다. 그러나 이건 그 이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래서 몇몇 권력자들의 도덕적 해이가 아니라, 대학입학과정 전반이 상류층 중류층 하류층 가려받는 식으로 이뤄진게 아니냐는 의심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전술한대로 북한에서 출신성분 따지듯이 말이다.
물론 대학교나 대학원 입장에선 사기 당한거라고 자기들도 피해자라고 항변하고 싶겠지만, 시비오가는 서류목록만 봐도 대학교를 피해자로 보는 건 말이 안된다. 의학논문(단국대), 발표초록(공주대), 인턴여부(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표창장(동양대). 이거 다 죄다 어디서 발급되었나? 다 대학교나 대학교 산하기관들이 발급해준 것이다. 역시나 조사과정에서 '스펙 품앗이 관행'이 등장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학교 안에서 벌어진 관행인데, 대학교들이 이걸 몰랐다? 이걸 모르면서 수능못믿겠다, 내신못믿겠다하면서 자기들이 뽑게해달라 소리하고 실제로 비중을 늘려왔다? 논술, 면접, 고등학교 교육과정 외 스펙, 자기소개서 비중 늘리면서 허위스펙 거를 능력도 없었던 건 확실하고, 그 이전에 거를 의사나 있었나 모르겠다. 이번에야 대놓고 가라쳤다고 난리가 났다만, 스펙허위여부를 떠나 상류층 미만 가정에서 쌓을 수 있는 스펙/없는 스펙 구분되면 집안수준 다 보인다. 위의 자기소개서만 봐도 명확하지 않은가?
실은 조국 전 장관 측을 옹호하는 세력이 강한 이유가 이거다. 조국 전 장관과 문재인 정부, 그리고 명문사학들이 욕먹으면서 굴러갔을 일인데, 정작 언론보도나 검찰조사에서 명문사학들을 공격하는 모습이 안보이니까 결국 조국 일가 찍어내기, 문재인 정부를 향한 검찰의 무력시위인 거다.
이 부분을 캐치하지 못한 국민들은 지금 굴러가는 상황이 굉장히 황당할 것이다. 아니 저렇게 잘못했는데 편드는 사람들이 왜이렇게 많아? 하지만 시간을 되돌려보자. 맨 처음 이 사건이 터졌을 때 이 문제가 조국 일가에만 해당된다고 생각했는지? 사람들은 이 문제가 대학입시제도 전반, 상류사회에 만연해 있다고 의심하고 있었는데 언론이나 검찰의 포커스는 조국일가에 집중되었고 명문사학들을 공격하는 모습은 사라져갔다. 이 문제의 당사자라고 볼 수 있는 대학교가 어느샌가부터 문제 바깥으로 사라져버렸다. 그럼 남은 건 검찰, 언론, 조국일가, 민주당정부 딱 요정도. 그럼 이 넷만 얽히면 정치문제다. 니편내편 문제가 된다.
딱하나 이 문제에서 대학교가 언급되는 요소가 있긴하다. 바로 입학취소여부. 마치 입학취소만 해주면 대학교들은 아무 잘못 없는 것처럼. 오늘도 종편에서 이 시간이 다뤄지던데, 서두부터 입학취소여부에 포커스를 맞추고, 패널들은 최순실 딸 이화여대 사건을 끌고와서 그땐 입학취소 빨리했는데 왜 이번엔 늦냐 아니다 유죄판결까지 기다리는 게 맞다. 싸우더라. 두 사건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을 모르고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것인지? 아마 후자일 것이다. 하나는 권력형비리고 하나는 계층제도에 대한 불만이라는 걸 모른다기엔 너무 똑똑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 사건에 대한 일반국민들의 생각이 계층에 대한 불만으로 기운다면 사회전반에 대한 '업셋'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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