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국민의당 단일화엔 함정이 있었다. LH사태로 더불어민주당이 큰 타격을 받은 이후, 윤석열 전 검찰총장 영입만 놓고보면 단일화 승리는 악재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대선행을 두고 한 친박 국회의원이 악마라도 손잡겠다고 했지만, 달리 들으면 악마라고 비유할 정도로 국민의 힘 내부에서 윤석열에 대한 비토여론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서울시장을 노리는 오세훈 안철수 두 당사자들은 윤석열과 손잡겠다는 말을 열심히는 하고 있다. 하지만 막상 대선국면에 접어들어도 그렇게 될까? 한달 전 이 사람들이 서울시장 단일화를 얼마나 좋게 이야기했던가? 그런데 막상 선거레이스가 시작되니까 유선 10%로 싸우고있다. 후보 당사자들이야 이미지관리차원에서 서로 좋게좋게 말한다한들, 정당대변인이나 단일화협상대표, 김종인 비대위원장 같은 사람들의 험담이 의미가 없던가?
오세훈 후보의 약진은 반민주당 대선 주자들에게 '용꿈'을 꾸게해주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평가는 하락세, 조국 전 장관은 아웃,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감옥살이, 이낙연 전 국무총리는 부진, 이재명 경기지사는 위험요소가 꽤 있다는 거.. 다들 알고 있었다. 하지만 눈에 띌 정도로 상황이 두드러지진않고 있었는데 이번에 뒤집혔다. 이쯤되면 지금 당장 지지율이 낮은 후보더라도 다음 대선에서 보수단독후보만 되도 잘하면 거저먹고 최소 박빙까진가겠다 욕심부릴만 하다. 여론조사 상 눈에 띄게 자기지지율을 빼앗기고 있는 홍준표 전 경남지사는 이미 윤석열 전 총장을 향해 견제구를 열심히 던지고 있는 중.
따라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보수진영 대선후보로 밀어주려면 보수정당 아랫쪽 전반이 '패배주의'에 찌들어있어야 했다. 우린 누가나와도 민주당한텐 힘들어, 악마라도 좋으니까 민주당 좀 이겨줘. 그런데 안철수가 출마선언을 하며 보수지지자들한테 '희망'을 줘버린 거다.
서울시장이래봐야 달랑 1년짜리다. 보수정당지지자들이 패배주의에 찌들어있었다면 원래 이 선거는 국민의힘 단독으로 이기면 좋고, 지더라도 윤석열 영입 명분이 세워지니 좋은 선거였다. 올 1월 말 사람들이 여론조사에 단일화가 힘들거라 응답한 데에는, '제발 누가 됐든 민주당 정권만 끝내줘!'하면서 몸달은 풀뿌리 보수지지자들과 달리 윗쪽은 그렇게 급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음이라.
그러나 안철수 후보가 판을 띄워버리고, 정작 판을 띄운 사람은 하락세인 반면 국힘 오세훈후보는 상승세라 박빙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시민단체 쪽에서 LH문제를 터뜨리면서 지는 게 이상한 선거가 되어버렸다. 여론조사 상으론 '단일화만하면' 누가 나와도 이기는 결과가 나오고 말았다.
오세훈이든 안철수든 단일화 한다 치자. 그래서 이겼다 치자. 그럼 그 이후 합당을 하고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영입설이 나온다면, 과연 그는 환영받을 수 있을까? 어찌저찌 온다 하더라도 '객장'에선 벗어날 수 없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객장'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그걸 모를까.
그러니 누구로 단일화하든 이기는 게 당연해진 그 순간부터 서울시장 재보궐은 이기는게 당연하면 안되는, 최소한 안철수 단일화는 없어야하는 선거가 되었다. 설령 오세훈으로 단일화해서 선거에서 지는 일이 발생하더라도 최소한 윤석열 영입의 기반은 남는다.
물론 오세훈 국민의힘 단일후보나 3자대결로 신승을 거둔다면 국민의힘 입장에선 빵빠레부를 일이다. 윤석열 전 총장은 외부인이고 심지어 박근혜 수사까지 했던 인물이다. 그런 사람보단 국힘 사람이 대통령되는 게 당연히 좋다. 지금 2퍼센트니 5퍼센트니해봐야 야권단일후보되면 싫어도 찍을사람 많을테고, 지금 지지율이 낮아도 반등이 가능하다는 걸 오세훈 후보가 보여주고 있다.
안철수가 갑자기 서울시장 출마를 하지않았더라면, 그리고 경실련이 LH사태를 터뜨리지않았더라면 지면지는대로, 이기면 기적의 승리인대로 좋게 흘러갔을 터였다. 하지만 이젠 안철수 단일화로 이긴다면 국민의힘 입장에선 애매한 결과가 남는다. '오세훈이 나갔어도 이겼을텐데...' 그렇다면 이후엔 합당을 두고 서울시장 안철수와 기존 국민의힘의 싸움이 벌어질거고, 윤석열 영입에 있어서도 지금 단일화줄다리기같은 내전이 벌어질 것은 기정사실이다.
열성 친박 당원과 반문 지지자들은 '이것저것 가릴 때가 아니다!'지만, 그랬으면 외국보수들처럼 기본소득제고 외국인노동자문제고 찬밥더운밥 안가렸고 이재명의 포지션을 국민의힘이 잡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높으신 분들은 급하지않다. 한국보수정당들은 이미 자신들의 경제공약/노선에 비해 충분히 과대대표되고 있다. 윤석열 전 총장조차 선거에서 질지언정 경제공약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않는다싶으면 어떻게든 내칠 정당이다.
그럴 예정이었는데 민주당이 생각보다 많이 부진하고 있다. 그만큼 윤석열 전 총장의 가치는 낮아진 상태에서 안철수 후보가 대선에 나오지않는다 가정한다면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다음 대통령 선거에 누구를 보수대표로 내보낼 건지 반쯤 결정하는 이벤트가 되었다. 이 기회를 놓치지않기위에 그동안 국민의힘에서 소외되었던 보수인사들이 속속 안철수 편을 들기 시작했다. 안철수 승리를 지렛대 삼아 차기 대선을 노리는 국힘에서 소외되었던 보수들, 오세훈 승리를 지렛대 삼아 차기 대선을 노리는 현 국힘사람들, 그래도 민주당 꺾으려면 윤석열 밖에 없다는 사람들. 아름다운 양보를 보여주기엔 너무나 큰 것이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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