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00604003003
정치권에서 기본소득 운을 본격적으로 띄우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당선과 버니 샌더스 돌풍이 휩쓸었던 미국, 새로운 정당들이 대거 원내입성했던 유럽 다당제국가들과 달리, 한국은 2개정당이 다 해먹고 있는터라 많은 사람들이 좌우개념에 큰 혼동이 올 것 같다. 남북대치가 현재진행 중인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기본소득제가 전면등장할 수 있는지, 이 시대에 기본소득제가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차근차근 정리해나가야할 것 같다.
기본소득제는 크게 3가지를 바탕으로 논의되어 왔다. 가장 먼저 로봇문제가 있다. 로봇때문에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경기악순환이 벌어진다는 것. 그리고 천연 자원 배분문제가 있다. 가령 산유국이 석유를 판 돈을 국민에게 나눠주지않고 소수 집단이 다 처먹는다면 경제위기 때 민중폭동이 일어날 것이다. 마지막이 정부지출의 효율성이다. 8년 전 18대 대선에서 허경영 후보는 출산 시마다 현금 3천만원을 지급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었다. 헌데 지금 문재인 정부가 지급하고 있는 액수가 1인당 3000만원을 넘어버렸다. 더구나 이건 아동수당 + 출산장려금 + 누리과정만 포함한 액수이고, 출산관련 정부예산을 신생아 수로 나눠보면 1인당 7천만원이 넘어가버린다. 출산주도성장 공약이 괜히 나왔던 게 아니다. 물론 그걸 말한 사람이 최저임금공약을 엎어버린 사람이라 다들 뻥공약이라고 생각했지만.
헌데 대한민국은 자원이 부족하고, 무역비중이 높으며, 복지지출비중도 많다고 볼 수 없는 나라다. 그럼에도 기본소득제가 공식화 된 데에는 다른 의미가 섞여있기때문이다.
https://www.ft.com/content/687c0184-aaa6-11e8-94bd-cba20d67390c
기본소득제 선거혁명(혹은 폭동)의 주역은 세계화때문에 몰락한 중산층이었다.
한국 기본소득제의 의미 1. 대한민국은 앞으로 양질의 일자리가 계속해서 줄어들 것이라는 것. 2. 양질의 일자리가 붕괴한다는 것은 서민중하층~중산층의 붕괴를 의미하는데, 그 기득권을 급진적으로 개혁하지않고 완곡하게 '우클릭' 하겠다는 것. |
기본소득제가 어떻게 좌클릭이 아니라 우클릭이 될 수 있는지 의아해할 수 있는데, 그건 현금지급=복지=더불어민주당=진보좌파, 그 반대가 미래통합당=보수우파라는 통념때문이다. 하지만 2020년 대한민국 유권자들을 이 통념에 끼워맞추면 안맞는 부분이 생긴다. 가령, 2010년대 후반 ~ 2020년 민족주의'좌파'세력은 한국 젊은세대들을 '보수화'되었다고 비판한다. 가진게 많아 통일이라는 변화를 두려워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젊은이들은 (시장)자유주의 세력에게 노동개혁에 미온적이라고 비판받는다. 가진게 없는데도 귀족노조를 옹호하고 그와 연대한 민주당에게 표를 준다는 것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답은 간단하다. 상대성때문이다. 대한민국 사회만 놓고보면 청년세대는 가진 게 없는 것이 맞다. 하지만 세계화에 맞춰 경제력이 약한 나라 사람들과 비교하면 가진게 많다. 이게 더불어민주당=진보좌파, 미래통합당=보수우파라는 과거의 좌우구분을 헝클어놓았다. 사실 이렇게 된 진 꽤 오래됐는데, 더불어민주당=진보좌파 미래통합당=보수우파가 널리 쓰이니까 편의상 계속 쓰는거고 좌우구분이 뒤죽박죽 된 지는 꽤 오래됐다.
북한문제가 국내정치에 유효했던 마지막 시기.
과거의 좌우구분은 크게 2가지였다.
하나는 대한민국의 안보환경때문에 등장한 좌우구분법. 북한에 대한 포지션이다. 통일담론에 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젊은 세대로 내려올수록 북한문제에 관심이 없다. 북한을 옹호하는게 아니다. 어찌보면 기존의 북한강경론보다 더 냉철한 스탠스다. 과거의 반공보수들은 최소한 북한을 '한민족'으로라도 여겼던반면, 이젠 아예 남으로 취급하는 거니까.
거기다 북한문제에 한국이 할 수있는 게 별로 없다는 사실도 들통났다. 제재엔 중국의 허가가 필요하고, 햇볕엔 미국의 허가가 필요하다. 대등한 협상을 하려면 독자적인 핵무기라도 있어야하는데 그마저도없다. 이러면 북한문제를 논하는 게 시간낭비가 된다. 그럴 시간있으면 민생문제를 하나라도 더 논하라는 압박을 정치권도 받게된다. 실제 선거에서도 북한이슈가 갖는 비중은 점점 더 낮아지고 있다.
고용과 복지는 반대개념?
다른 하나는 보편적인 좌우구분법. 복지에 대한 입장이었다. 세출측면에서 '복지비중이 큰 정부'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느냐, 혹은 부정적으로 바라보느냐였다. 세입측면에선 (국가에게 소득을 뜯기지 않을)자유 vs (빈부격차를 완화하는)평등 구도가 되기도 했다. 근데 이게 '경제 민주화' 개념이 등장하면서 어느정도 매듭지어졌다. '경제민주화'가 남긴 교훈은 간단했다. '자본주의사회에선 돈없이 자유로울 수 없다'라는 것이었다.
이 '경제민주화'를 통해 복지를 옹호하던 사람들은 '자유를 좀먹는 종북빨갱이'낙인을 벗을 수 있었다. 그럼 반대쪽 사람들은 손해를 보았는가? 그렇지 않았다. '빵을 살 수 있는 자유'가 강조되었을 때,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재평가 될 대통령은? 바로 박정희다. 박정희. 이 논리대로라면, 박정희 전 대통령은 정치적인 자유는 크게 손상시켰지만, 산업화/근대화를 통해 빵을 살 수 있는 자유를 준 사람이 된다. '경제민주화'라는 개념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후보시절 받아들인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이 경제민주화는 자유시장경제에 정부가 간섭한다거나 복지지출을 늘리기만하면 자유침해하는 북한빨갱이라고 죽어라 주장할 수 없게 만들었다. 물론 '어느정도의 돈을 가지고 있어야 자유로운 인간인가?' 혹은 '어느정도의 돈을 가지고 있어야 평등한 사회인가?'라고 물을 수는 있기때문에 여전히 유효한 개념이지만, 과거에 비하면 위상이 많이 약화되었다.
중산층이란 뭘까?
한국에서 이 두가지 좌/우구분법 비중이 낮아지는동안, 유럽과 미국에선 기존의 좌-우 구분법으로 설명할 수 없는 정당들이 원내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론들은 그 세력들을 '극우', '극좌', '포퓰리즘' 등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이 3개의 표현 어떤 것도 딱 들어맞질않았다. 근데 사실 이들을 관통한 주제는 존재했다. 바로 '중하서민층-중산층의 몰락'이었다.
이 개념을 가장 쉽게 표현하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해보았는데, '기득권'이라는 단어를 다각도로 조명해보는 게 가장 빠른 길이라고 생각한다.
기득권. 협소한 의미로는 사람 혹은 집단에게 매우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기득권 집단, 기득권 세력이라하면 '한 사회에서 막강한 권력과 부를 가지고, 사회 전체에 효율감소가 일어나더라도 가진 막강한 권력과 부를 이용하여 자기 욕심만 채우는 사람 혹은 세력'을 뜻한다.
그럼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기득권인가? 재산 10억이 있으면 기득권인가? 아니면 100억이 있으면 기득권인가? 사회적으로 좋은 자리에 앉아있으면 기득권인가? 그럼 좋은 자리은 어디부터 어디까지인가?
협소한 의미의 기득권은 대충 조선일보가 편드는 쪽이 기득권이라고 보면 얼추 맞아떨어진다. 가령 사립유치원과 교육부가 충돌했을 때, 조선일보가 사립유치원 원장들 편을 들면, 여론은 유치원 원장 쪽이 기득권인 것으로 인식해버린다. 이게 바로 언론의 이미지와 신뢰성이라는 거겠지...약간 어이없을 수도 있는데 현실이다.
이런 협소한 의미의 기득권말고 '상대적인 기득권'은 어떤가? 재산 10억가진 사람은 절대적으로 기득권이 있다없다 따지기 어렵다. 하지만 전재산이 통장잔고 100만원인 사람에겐 기득권으로 여겨지기 쉬울 것이다. 연봉 1억 5천을 받는 국회의원은 절대적으로 기득권이 있다없다 못박긴 힘들지만, 시급 1만원짜리 알바생과 비교해보면 기득권이라고 부르기 쉬워진다.
원래대로라면, 이 두 가지 기득권은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다. 1000명 중에 700등이 낮다는 건 그냥 따지든 50등이랑 비교하든 대체적으로 낮다고 여겨질테니까. 하지만 '세계화'와 '로봇화'가 들이닥친 사회라면 어떨까?
https://www.etoday.co.kr/news/view/1896844
시급 1만원짜리 알바생은 절대적인 의미로 기득권을 가졌다고 말하기 힘들다. 아마 이 사람들한테 '너는 기득권자임'이라고 하면 화내거나 이들에게 정신나간 인간으로 취급받을거다. 하지만 '외국인 노동자'와 비교해도 기득권을 가지지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얼마전 LG전자 구미공장이 해외로 이전하였다. 이전지는 인도네시아다. 인도네시아의 최저임금은 한화로 약 40만원 정도다. 인도네시아 노동자와 비교했을 때 월 200만원 가까이 받는 한국 편의점 알바생은 기득권일까? 아닐까?
이게 바로 기존 좌/우 구분법과 뒤섞인 새로운 좌/우 구분법의 정체다. '중하서민층-중산층의 기득권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이 관점에서 바라보면 대한민국 유권자의 모순이 훨씬 쉽게 설명된다. 대표적으로 가진 게 별로 없는 알바생이 노동개혁을 싫어하는 경우.
가진 게 별로 없는 사람이 노동개혁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는 경우는 '공격받은 기득권이 흩어져서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기대가 있을 때'이다. 근데 중하서민층조차 기득권을 가지고 있다는 관점에서보면, 대한민국 사회 구성원들은 작든크든 크기의 차이만 있을 뿐 기득권을 가진건 매한가지이므로, 귀족노조를 잡는다고해도 자신의 기득권까지 깎으려들면 들었지 더 얹어줄거라 기대하긴 어렵다. 되려 알바생의 나이가 어리다면 미래기대가치때문에 노동개혁을 반대하는 쪽이 더 이득일 수도 있다. 설령 그로인해 해당 기업이 한국을 떠나더라도, 어차피 그렇게 떠날 기업이라면 노동개혁 후 자신의 작은 기득권을 챙겨주었을거라 기대하긴 힘들다.
http://www.donga.com/news/article/all/20160101/75680931/1
이쯤되면, 더불어민주당이 왜 계속 잘나가는 지 눈치챘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중하서민층-중산층의 기득권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관점에선 '보수우파'이기 때문이다. 원래 가진 걸 지키는 쪽이 더 필사적인 법이다. 그게 스스로 '기득권'이라고 인식을 못할 정도로 작은 것이라면 더욱 더 필사적일 수 밖에 없다.
언론에게 '귀족노조'로 지목받는 가장 대표적인 업계가 자동차다. 그런데 전기차 시대가 가까워져 공정이 단순해지고, 생산거점이 임금 더 싼 해외로 이전되었다. 거기다 로봇화도 현재 진행중이다. 그에따라 한국 자동차공장에서 노동자가 점점 더 불필요해지고 있는데 그건 누구보다도 당사자들이 제일 잘 안다. 이들의 파업 마인드는 '어차피 오래 못간다. 벌 수 있을 때 최대한 벌겠다' 딱 이거다. 그나마 좀 번다는 사람들도 기득권 상실과 계층하락에 비관적이고 신경이 곤두서있는데, 쥐꼬리만한 기득권을 가진 계약직부터 가진거라곤 부동산 몰빵으로 집한채밖에 없는 사람들까지. 이 사람들은 얼마나 필사적이겠나.
반대로 미래통합당을 몰락시킨 건 내부 '급진 좌파'들 때문이다. 좌파라는 두글자에 거부감이 든다면 한번 더. 개발도상국 노동자의 임금과 비교해서 한국사람들의 최저임금제, 의료보험, 근로시간제한, 임금 수준 등을 '기득권'이라고 본다면, 노동개혁은 '한국인들의 기득권을 타파하자'라는 주장이 된다. 그렇다면 노동개혁이 어떻게 '보수'적인 주장이 될 수 있는건가? 당장 한국에 체류 중인 합법 외국인 노동자들의 임금과 그들이 본국에서 일했을 때 대우를 비교해보면 누가 기득권을 가졌는 지 답 나오지 않나?
헬조선이 박근혜 정부시대를 관통한 단어였다면, 소확행은 문재인 정부시대를 관통하는 단어이다. 소확행은 헬조선보다도 훨씬 쓰레기같은 단어인데, 헬조선도 좋은 단어라고 할 순 없었지만 최소한 거기엔 엎어버려서라도 뜯어고치자는 '의지'라도 있었던반면, 소확행은 아예 체념적이다. 심지어 자연스럽게 유행을 탄 것도 아니고, 언론이 '인공적'으로 퍼부어서 유행시킨 단어다. 한줌의 기득권마저 상실한 중하서민층~중산층에게 주어진 정신승리용 아편이다. - 위 이미지 출처는 https://theqoo.net/square/1007836183 |
약간의 음모론을 첨가하자면, 경제이야기만하면 자유부터 말하고, 당내에서 뻑하면 좌클릭이라고 발목잡는 미통당 쪽 급진좌파 세력이 '소확행'을 유행시켜 문재인정부를 도와준게 아닐까 개인적으로 의심하고 있다. 노동개혁같은 주장은 한줌의 기득권을 복원하려는 헬조선과 상극관계인데, 소확행은 헬조선보다 훨~씬 안정적인 단어다. 경기불황에 뚜껑 열리게만드는 헬조선과 양질의 일자리 취업 실패, 결혼 출산 단념, 자동차 및 주택구입포기를 소소한 행복으로 색칠해주는 소확행 중 어느 쪽이 이 급진좌파들에게 좋을 진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친박이나 태극기부대같은 극성보수지지자때문에 자유한국당이 망했다 - 라고 하는데, 광화문에서 태극기 흔들던 사람들이 중도층에 마이너스(-) 요인인 건 맞다. 하지만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보기엔, 극성맞은 사람들이 있던 건 상대편도 마찬가지였다. 2019년 조국 정국이 대한민국을 강타했을 때, 서초동 촛불집회하던 사람들을 중도층들이 좋게 바라봤을까?
https://m.mbn.co.kr/tv/405/0/1037043
맨 처음 '경제민주화'가 한국에 들어서면서 (구)좌파들은 빨갱이딱지를 벗어났고, (구)우파들은 산업화시대를 재평가받았다고 서술했다. 그렇게 새누리당은 경제민주화 프레임을 선점해놓고, 창조경제를 통해 스스로 버려버렸다. 누가 버리게했을까. 박근혜 전 대통령 본인이나 산업화세대에겐 경제민주화가 이득이었을지 모르지만, 개인주의를 밑바탕에 둔 '미국식 국가로부터의 자유'를 추구하는 세력들에겐 전혀 아니었다.
이들은 변화하는 시대에도 과거의 좌우구분법에만 집착했고, 평범한 한국당 지지자들을 거기에 같이 얽매이게 만들었다. 이 사람들에겐 자유시장경제에 정부가 간섭한다거나 복지지출을 늘리기만하면 자유침해하는 북한빨갱이라고 죽어라 주장할 수 있었던 그 시절이 더 좋았을 테니까. 그 덕에 자유한국당이 '낡은' 정당이 된 것이다.
그렇다고 이 사람들에게 승산이 있었냐고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국민을 '징병'하는 나라에서 개인주의를 밑바탕에 둔 '미국식 국가로부터의 자유'를 추구하는게 먹힐까? 징병제를 폐지한다고 해도, 한국의 안보환경 상 총기는 엄격히 관리될 것이다. 총기라는 최후의 수단마저 없다면, 사회를 살아가는데있어 각종 분쟁은 법적으로 해결해야한다. 근데 총기는 자기가 스스로 들고 쏘면 그만이지만 법적해결은 법률가를 통해야하며, 판결은 국가의 몫이다. 그러니 이 노선이 망하는 건 처음부터 뻔했던거다.
이들은 미국식 국가로부터의 자유에서 이득은 취하고 싶었지만, 그 기반사상인 총기자유화를 추구할 배짱은 없었다. 5.18조차 무서워서 폄하하는 사람들인데 뭘 더 바랄까? 그러니 국가끼리 정부끼리 경쟁시키자는 '탈국가 자유주의'로 흘렀던거고, 그래서 한일무역분쟁 때 한국정부 책임론 들고 나왔다가 유권자들한테 찍혔던 거고, 얼마나 망했는지 전임 원내대표 지역구엔 누가 나가도 이길 수 있다는 분석이 있었다고 민주당 총선 관계자가 인터뷰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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