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의 경선연기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일단 윤석열 검찰총장의 행보를 지켜본 뒤 대선경선을 하자는 주장을 민주당은 마냥 모른척할 수 없다. 왜냐하면 진짜로 윤석열 진영 측에서 어부지리를 노리고 있을 수 있기때문이다. 국민의힘이든 더불어민주당이든 경선이 과열되면 지지자들끼리 감정이 크게 상하게 된다. 그러면 경선불복성 이탈이 일어날 수 있는데, 그틈을 노려 윤석열 진영이 주워먹기에 나설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는 '꼭' '굳이' 당규까지 바꿔가면서 연기해야하는지 의문을 품는 사람들은 설득할 수 없다. 일정조정도 크게보면 경선룰 조정이 되는거고, 차후 불복의 빌미가 될 수 있기때문이다. 하다못해 차기 대선후보군들이 너도나도 상대정당과 난타전이라도 벌이고 있으면 내부분열방지 차원에서라도 연기론이 힘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나 윤석열 후보진영과 적극적으로 드잡이질을 벌이고 있는 건 경선연기론을 반대하는 이재명 추미애 진영이다. 경선연기를 희망할만한 이낙연 - 정세균 진영은 변수를 만들어내지 못한 채, 1위 이재명 - 2위 이낙연 - 3위권 정세균 박용진 추미애 구도가 평온하게 굳어져가고 있다.
그동안 이낙연 - 정세균 진영은 이재명 진영의 기본소득제를 공격했지만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다. 이건 기본소득과 안심소득의 간격이 매우 좁기때문이다. 원래대로라면 기본소득을 때리고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포지션을 잡을 요량이었겠지만, 오세훈 시장의 안심소득으로인해 국민의힘 최전선이 좌측으로 잔뜩 땡겨져있었다. 꼭 기본소득을 원한다기보단 '피자 한판을 이야기해야 몇조각이라도 얻어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기본소득제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감안하면, 기본소득제를 공격하고 오른쪽으로 자리잡을 공간은 처음부터 없었던 게 당연했다.
연 50조원이상의 예산이 필요한 안심소득제는 2022년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기간 동안 격전이 벌어질 요충지다. 이렇게 된 건 최저임금인상정책에 대한 기대치가 박살났기때문이다. 지난 대선 때 최저임금 1만원은 전면적인 복지정책을 부담스러워하던 유권자들이 고른 메인이슈였는데, 한줌의 낙관마저 가루가 되었다.
최저임금인상 공약 파기 그 자체보다는 과정이 문제였다. 언론들은 무인화와 물가상승, 일자리 증발 논리로 최저임금인상론을 내리찍었다. 이제 유권자들은 사람의 값어치가 자기들 생각보다 싸구려라는 것을 알았다. 처음엔 보수종편언론에 뭔가 다른 비책이 있는 건가 싶었지만 그딴건 없었다. 업종별로 최저임금인하와 외국인 고용부담금을 맞바꾸어 달래기라도 시도하려나? 싶었지만 이 사회 보수주류들에게 그런 주장은 '극우'였나보다.
어쨌든 미래전망이 비관적으로 변한 유권자들은 발이 굳게 된다. 그리고 보다 확실한 것을 원하게 된다. 쉬운해고위험이 동반된 노동개혁보다 정년연장을 원하고, 멀리바라보고 현재를 희생해하자는 설득보다 챙길 수 있을 때 챙겨놔야한다는 위기감이 커진다. 챙길 것조차 없는 사람들은 돈많이드는 행동을 줄인다. 그 결과 중 하나가 출산율 추가하락이다. 복지정책도 간접지원보다 확실하게 '현금'을 쥘 수 있는 방향을 원한다. 기본소득제, 안심소득제다.
더구나 기본소득제는 어디까지나 기존 선별적 복지정책들에 대한 이미지가 개박살나서 뜬 공약이다. 최저임금인상 부작용을 보완하기위한 구직지원은 청년들이 게임기산다고 두들겨맞았다. 코로나 이후 실업급여는 얌체족문제가 거론되었다. 재난지원금 선별로 줬더니 노점상 왜주냐고 난리가 났고, 끝내 유흥업소를 비롯한 자영업자들이 손실보다 더 많은 세금을 받아갔다는 끝판왕급 보도가 나왔다.
이 모든 것들은 그동안 세금을 꼬박꼬박 냈지만 지급대상에서 배제된 사람들을 열받게 만들었다. '이럴바엔 차라리 똑같이 나눠갖자' 그래서 기본소득제에 대한 지지세는 단단할 수 밖에 없고, 기본소득제를 옹호하는 논리는 멀리서 찾지않아도 된다. 그냥 보수신문이 박근혜정부, 문재인정부 선별복지정책 공격하면서 쌓은 보도사례들 그대로 돌려서 퍼부으면 그만이다. 기본소득제가 좋아서하는 게 아니라 보수신문보니까 선별복지가 한계가보여서 어쩔 수 없이 하는거라고.
그렇지만 기본소득제에 약점이 없는 건 아니다. 1인당 지급액수다. 연 50조원 예산을 소모한다 했을 때 1인당 돌아가는 액수는 1년에 100만원, 4인가구 기준 연 400만원, 월 36만원정도. 애매하다. 안심소득과 비교해보면 더 두드러진다. 이 쪽은 3000만원 소득기준으로 1500만원이 지급된다.
그렇게보면 확실히 안심소득제는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들의 공세를 효과적으로 막아낼 수 있는 요충지다. 이재명 지사의 기본소득제 공세를 효과적으로 차단하면서 다른 민주당후보들의 경제공약을 자리잡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면 안심소득제는 뚫리지않을 무적의 방어선인가? 그렇지않다. 자세히보면 신뢰도면에서 굉장히 치명적인 부분이 있다.
공약이 좋고나쁘고를 떠나 파기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안심소득제 공약은 파기되기 쉽게 설계되어있다. 만약 정치적으로 이 공약을 어떻게든 못박겠다고 마음먹었다면, 보장비율을 줄이는 한이 있더라도 수혜범위는 50%가 아니라 70%여야 했다. 특히 소득분포기울기가 상위30%부터 급격히 높아지기시작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받는 사람과 못받는 사람 양 쪽 머릿수가 대등하면 파기하기 쉬워진다. 특히 중위소득 근방의 사람들에겐 푼돈만 돌아가므로 사실상 안받는거나 마찬가지라보면 실질적으로 안심소득제 공약이 그대로 현실화 될거라 기대하긴 매우 어렵다. 거기다 3년 동안 실험하겠다는 단서까지 붙어있다. 도망갈 구석을 만들어놨다.
이건 안심소득제 공약이 분명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기 좋은 자리인 건 맞는데, 유지비가 돈먹는 하마 취급받는 곳이기때문이다. 계산 조금해보면 금방 나온다. 연 50조원이다. 기존 국민의힘세력, 특히 보수종편언론들의 논조는 복지예산증액에 부정적인 작은정부모델에 기울어있었다. 정부가 예산을 쓰는 것보다 감세를 선호해왔다. 새로운 보수당 계열을 제외하고, 나머지 보수세력 입장에서 안심소득제는 기본소득제와 다를게 별로 없는 좌파 빨갱이 정책이다.
이런 좌파성 정책을 틀어막고 작은정부론으로 돌아가는 방법이 있긴 있다. 거물을 외부 대선후보를 데려와 호의적인 언론플레이를 내보내주는 등의 도움을 주는 대신 자신들의 노선을 대변해달라고 하는 것이다. 그게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든 말이다.
안심소득제는 내부분열을 불러일으킬만한 폭탄이다. 안심소득제에 대한 공세를 대대적으로 퍼붓는다면 이준석 당대표는 어떤 결정을 할까. 당론지정? 물리기? 지휘관이 계산적인 사람이었다면 이재명 지사한테 재원문제로 공격받았을 때 지도부차원에서 진작 포기되었을 고지다.
헌데 여기 지휘관은 오세훈 서울시장이다. 서울 재보궐 선거를 기세싸움 구도로 단순하게 만들고 승리한 사람이다. 그리고 예전 무상급식 논란을 기억한다면 알겠지만 고집이 강하다. 뒤에서 가성비떨어진다느니 피로스의 승리가 될거라느니 계륵인 곳이라느니 떠들든말든 민주당 공세를 틀어막기좋은 자리를 포기하지않고 전병력 위치사수를 지시할 사람이다.
사실 그래서 지난 서울재보궐선거글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질거면 부동산으로 져야한다고 썼던 것이다. 오세훈 시장의 공약은 선거이후 부동산 추가폭등심리를 자극할 게 뻔했다. 책임 다뒤집어쓰기 싫으면 공약이 파기되거나 후퇴될 가능성이 컸다. 부동산 공약 파기 및 후퇴는 안심소득제에 대한 신뢰훼손으로 이어지고,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들이 안심소득제 방어선에 형성된 전선을 쭉 밀어올리는데 도움을 준다.
국민의힘 입장에선 다행스럽게도 더불어민주당의 공세가 산발적이었다. 아니 그냥 없다시피했다. 이낙연 정세균 진영은 안심소득제보다 기본소득제를 때리는 데 집중했다. 기본소득제를 향한 공세 자체는 이상할 게 없다. 분당같은 변수가 없다면 어차피 본선 올라가기 전에 이재명 경기지사와 붙긴 해야한다. 하지만 순서가 희한했다. 서울재보궐선거 때 대서특필되었던 50% 안심소득제를 밀어내지못한 채 움직이다보니 정작 본인들의 경제모델인 마이마이복지나 신복지는 존재감을 전혀 발휘할 수 없었다.
오늘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대선 출마선언을 했다. 그리고 경제공약이 이슈화됐는데, 안심소득제를 물고늘어지지않는 한 다른 민주당 후보들의 경제모델, 복지모델이 빛보긴 힘든데도 어그로가 끌렸다는 건.... 역시나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재벌 대기업 급여 3년간 동결.
경선연기를 굳이 해야되냐는 사람들을 설득하려면 최소한 연기해봐야 현 구도가 바뀌지않을거란 예견이라도 깨야한다. "왜 굳이 연기해야하지? 어차피 연기해봐야 결과는 안바뀌지않나?"와 함께 원칙을 깻을 때 부작용을 우려하는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경선연기진영은 최소한 안심소득제 고지에서 국민의힘 진영을 쫓아내고 이야기하는 것이 매너다. 그래야 오세훈식 안심소득제를 쫓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 건설적인 경제모델(70퍼센트 안심소득제든 마이마이복지든 신복지든)들과 기본소득제 간 건설적인 경쟁을 하는 그림이라도 그려질 것 아닌가.
p.s '재원마련'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쓰지않았다. 일단 기본소득제~안심소득제 담론에 '피자 한판 이야기해야 몇조각 얻어간다'는 심리가 깔려있어서기도 하고, 재원출처로 군복무제도 변경 쪽이 의심스럽긴한데 부사관 성추행 사망 사건으로 인해 이쪽 이야기가 멈춰버렸다. 징병거부운동이 벌어질 조짐이 보이는데 그때가서 다시 정리해봐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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