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징병제 논의는 남녀간 감정문제가 커진 탓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돈'문제다. 공무원 증원문제와 연결시키면 이해하기 쉽다. 문재인 정부 임기 동안 공무원이 9만명 정도 늘었는데, 당연하다는듯이 너무 많이 늘렸다며 비판 공세가 쏟아졌다. 헌데 9만명 중 모병제 전환과 관계있는 증원이 많았다는 것은 고의로 쏙 빼놓은 탓에 눈치채기 쉽지않다. 실은 임기초기부터 2022년까지 경찰관 2만 3천명 증원, 소방관 2만명 증원, 군무원부사관 2만6천명 등 대규모 증원계획을 세워놓고 있었고 그 결과가 9만명인 것이다. 선거공약에도 있었던 내용이다.
일이 이렇게 된 까닭은, 병역자원에 펑크가 났기때문이다. 경찰의 경우 2018년 기준 의무경찰 25911명의 보조를 받고 있었으나 병역자원 부족때문에 점차 줄여 2023년 완전 폐지된다. 소방관은 3교대근무 추진으로 인해 대규모 증원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보조인력인 2천명 정도의 의무소방모집을 폐지했다. 군대는 원래대로라면 부사관을 대폭 증원하여야했으나 직업군인은 일반 공무원에 비해 인건비가 훨씬 비싸다. 그래서 부사관은 일단 소폭증원, 군무원은 대거 채용한 뒤 후방에 있었던 부사관들을 새로들어오는 군무원들과 자리를 바꿔 전방으로 재배치시키고 있다.
물론 9만명 전부가 병역자원감소때문에 증원된 것은 아니다. 필요없는데 굳이 하는 진짜 욕얻어처먹어도 되는 증원도 있고, 노동부처럼 연이은 과로사로 인해 급하게 증원이 된 분야도 있고, 사회복지직처럼 진상 민원인들이 많아 업무진행에 중간중간차질이 생겨 인원이 더 필요하게 된 경우도 있다. 어쨌든 병역자원감소로 인한 경찰관, 소방관, 군인 증원비중이 높은 건 사실이다. 모병제 전면 시행을 검토하기 앞서 경찰, 소방 쪽에서 '미니모병제'가 시행된 셈이다.
이것을 포함해 올해 초 보수언론에선 공무원 과잉시대라고 난리를 쳤었다. 문재인 정부가 공무원 증원 많이했다고 비난하면서 예산부담으로 1인당 30년 누적인건비 17억원을 제시했었다.
그런데 2020년 기준 대한민국 국군 규모가 55만이다. 이 중 19만명이 장교, 부사관이고 병사가 35만명이다. 병력부족으로 인해 코로나19 백신 접종한 병사를 백신휴가도 못주고 경계근무조에 넣는 판국이고, 해안경계에 만성적인 인력부족이 벌어진 지 오래되었는데도 뗏목귀순 빨리 포착하지못했다고 보수신문한테 질타받는 게 현실이지만 어쨌든 모병제 감축을 강행하고, 대신 북한군 3분의 1규모인 40만명선만큼은 지킨다고 치자.
그러면 필요한 직업군인 증원은 20만~25만이다. 공무원 1인당 인건비 17억원을 기준으로하면 직업군인 증원에 필요한 예산은 30년동안 340조~425조원이다. 연평균 11조~14조다. 2019년 기준 장교 부사관 총 인건비 9조 9천억원에 30년 간 급여인상분이 추가된다고 가정해 교차검증해보면 11조원~14조원조차 낮은 금액이다.
11조원~14조원이 '최소'일 수 밖에 없는게, 군무원을 후방에 집어놓고 군인을 전방에 빼는 이유가 예산부담, 특히 군인연금때문이다. 즉, 직업군인은 공무원보다 돈이 더 많이든다. 게다가 총 병력 축소로 인한 전력감소를 화력강화로 메우려면 장갑차, 전차, 전투기 등 전투장비 추가도입은 필수이니 정말 보수적으로 잡아도 연평균 20조원 이상 바라봐야한다.
일각에서는 연 4조원을 이야기하는데, 이 4조원이 어떻게 나온거냐면, 증원에 필요한 15만명 보수를 "하사 1호봉(!!!)의 90%"로 가정하고 계산한 것이다. 하사 1호봉도 아니고 하사 1호봉의 90%다...단기하사들이 그 박봉을 감내하는 건 어차피 끌려올 거 돈이라도 더 모으자고 반강제적으로 온 거든가, 아니면 장기복무를 바라고 열정페이를 감수하는 것 뿐이다.
실제로 유급지원병(전문하사)는 13년~18년 동안 미달을 피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더군다나 2030년대 저출산영향으로 청년몸값이 폭등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경우, 군인 모집을 채우려면 대기업연봉을 쥐어줘야될 수도 있다.
4조원이란 액수는 모병제 전환비용보다 '여성징병제 시행 비용'으로 보는 게 더 적합하다. 이전부터 병사월급인상여론은 강한 편이었고, 이미 국방중기계획에 따른 2025년 병사월급이 96만원이다. 이 액수가 '하사 1호봉의 50%'이고 이를 위해 추가 투입되어야하는 예산이 1조원 정도다. 그런데 병역자원 부족을 메우기위해 여성징병제를 도입을 추진하게되면 징병대상인 현 여중생~여고생 세대나 그 부모세대를 중심으로 반발이 당연히 커진다.
이러면 당근이 더 필요해지는데 사실 월급을 50만원에서 더 올리는 게 효능감 측면에서 좋을까? 그보단 전역에 따른 '경력단절'에 대한 보상으로 퇴직금형식의 목돈을 쥐어주는 쪽이 나을텐데, 실제로 이와 비슷한 공약을 낸 차기대선후보도 있다. 또한 여성은 몸쓰는 일을 잘 못한다는 '성차별적인 인식'이 아직까진 남아있기때문에 여성징병제를 시행했을 때 전력약화를 우려하는 여론도 목소리가 커진다. 이를 달래려면 직업군인도 소폭 증원도 필요하다. 이정도라면 4조원에 맞출 수 있다.
그래서 여성징병제는 예산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다른 심각한 문제가 하나 있다. 여성까지 다 징집해봐야 2035년부턴 답이없다. 당장 2019년 33만명이던 19세이상 남성 숫자가 2020년대가 시작되면서 20만명 대 초반 수준으로 급락한다. 20년 전 IMF외환위기 발 저출산 후유증이다.
그렇게 2030년까지 20만명 대 초반으로 유지될 19세 남성 숫자는 2035년부터 2차로 급락하기 시작한다. 최근 저출산의 원인을 극단적 페미니즘탓으로 돌리는 주장이 있는데 출산율은 '소득수준이나 소득안정성'에 최우선적으로 비례하고 안정적인 직종의 출산율엔 큰 이상이 없다. 그냥 돈문제가 제일 큰 것이다. 예비부모연령대에서 평생직장이나 정년개념이 완전히 사라지고, 불안정해진만큼 월급이 오르지도 못한 게 바로 이시점이다. 또한 맞벌이가 완전히 보편화된 것도 출산율에 악영향을 주었는데, 맞벌이란 것도 소득불안을 해소하기위해 확대된 것이니 근본원인을 따져보면 결국 돈문제다.
징집대상 남성숫자가 줄어드는데 남녀성비는 정상이니 당연히 여성숫자도 같이 떨어진다. 여아낙태같이 헛소리하는 구닥다리 페미니스트가 있다면 거르도록하자. 개인적으론 그런 사례가 있겠지만 거시적인 관점에서 남아선호시대가 남녀출생성비로 나타나던 시절은 이미 15년 전 끝났다. 결국 지금 여성징병제해봐야 2035년엔 그마저도 한계다.
결과적으로, 여성징병제 도입 vs 모병제 전환은 함정이다. 어차피 둘 모두 하지않고 하나만 하면 파국이기때문이다. 여성징병제 도입은 해봐야 오래못가고, 그렇다고 모병제 의존하면 허리가 휘어진다. 안그래도 빈부격차가 극심해져 여야 상관없이 기본소득이나 안심소득이야기가 선순위에 있는 판국이다. 서로 너네쪽 재원이 많이 든다고 쌈박질할 게 뻔한데 여기에 전면 모병제까지 더해지는 건 가망이 없다.
어차피 병역자원부족을 모병제전환만으로 해결하는 것은 이번 '성추행 피해 공군 부사관 사망사건'의 영향으로 더 하기 힘들어졌다. 어느 기사에선 이런 사건이 터졌는데 무슨 여성징병제냐고 이상한 이야기를 하던데, 실은 그 반대다. 이번 사건은 여성징병제 도입을 해서라도 왜 징병제를 유지해야하는 지 보여준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작은 사회'의 부작용이 그대로 드러난 사건이었다. 군대 내에서 간부 간 성추행 사건같은 것들은 회식자리같은 '병사들 눈 밖'에서 벌어진다. 왜냐하면 입대장병은 복무기간 채우고 전역한 뒤엔 그 부대와 '남남'이기때문이다. 이해관계가 장기적으로 얽혀있지않기때문에 전역 후 신고, 폭로하기 더 쉽다. 켕기는 게 있는 내부인 입장에서 단기복무자같은 '반외부인'은 껄끄럽다. 그런데 모병제 전면 시행으로 그 외부인들 눈도 사라지고 나면 은폐, 축소, 회유는 더 쉬워진다. 극단적으로는 민주화운동을 탄압하는 미얀마군처럼 시민사회와의 감정선이 완전히 격리될 수 있다.
이걸 누구보다 제일 잘 아는 건 여성계일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남성 중심문화의 악폐습을 근절시키기위한 수단으로 머릿수를 늘리는 것이 제시되었고, 그게 할당제 확대로 이어졌기때문이다. 할당제의 논리대로라면, 청와대가 말한 군대 내 성평등한 군 조직문화 개선에 필요한 것은? 결국 군대 안에서 여성의 머릿수를 늘려야하는 거고, 그러려면 여성이 징병되어야한다. 여성징병은 여성교관, 여성간부, 여성장군, 여성부대 편성 등으로 이어지며 여성이 군대 내 소수집단에서 벗어나게 해줄 것이다.
청와대는 여성징병제의 전제조건으로 '공론화'를 붙였다. 타당한 이야기긴하다. 여당 당대표든 야당 당대표든 여성징병제얘기는 꺼내지도 않는다. 임기도 얼마 안남았으니 차기대선주자들에 맡기는 게 더 합리적이다. 하지만 정치인들이 서로 공론화를 미루다가 병역거부운동이 불어닥칠 수도 있다.
여성징병제 찬성자들 입장에선 불만이 있을 수 있겠지만 지금은 문재인 정부 임기 막판이다. 여성징병제같은 문제는 차기대선후보들에게 묻거나 대선후보들을 서포트하는 당대표들에게 답변을 요구하는 게 맞다. 지금까진 공론화를 서로 죽어라 미뤘는데 대선 끝까지 모른척하는 게 가능할까?
밖에서 여성징병제하자고 난리치는 건 그나마 괜찮다. 문젠 군대 안에서 일이 터졌을 때다. 이제부터 입대하는 애들은 학교에서 '성평등 교육'을 집중적으로 받았다. 문재인 정부 집권 기간 동안 여성계의 영향력은 매우 컸고, 성평등교육이 사회전반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런 교육을 받은 남자애들이 '남성징병'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여야하는 나이가 됐다.
작은 움직임 정도야 내리누르겠지만, 이런 움직임을 앞에서 통제해야할 단기장교, 단기부사관들도 반쯤 끌려온 사람들이다. 이번 주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가 인정받아 무죄판결이 선고된 사건이 있었다. 이제 군대에서 사고친 애들이 '특정 성별만 병역을 수행하는 건 불공평하다'는 개인 신념을 근거로 병역을 거부한다고 항변하면 어떻게 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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